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박성진 논설위원 칼럼] ‘빽’ 없는 청년백수들의 탄식..
오피니언

[박성진 논설위원 칼럼] ‘빽’ 없는 청년백수들의 탄식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5/08/25 09:57 수정 2015.08.25 09:53



 
↑↑ 박성진
본지 논설위원
 
청년 실업 해결이 절실한 때
현대판 음서제 부활 소식은
젊은이들 힘 빠지게 한다
일자리 늘리기 사업 필요하지만
좁디좁은 취업 문 더욱 틀어막는
권력 이용한 취업청탁 뿌리 뽑아야

일전에 어떤 뉴스 메이커가 그랬다. 대한민국은 ‘빽’ 공화국이라고. 혈연(血緣)과 지연(地緣), 학연(學緣)이 인생을 좌우하는 것도 모자라 돈으로라도 사고 싶은 것이 ‘빽’이라 했다. 사전에는 없는 말인 ‘빽’은 이미 우리나라 건국 초기부터 회자하던 용어였다. 혹자는 영어 ‘백 그라운드(back ground)’, 즉 배경을 가리키는 조어(造語)라고도 한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을 보낸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에서 ‘빽’은 차라리 동경의 대상이었다. 국회의원이나 장ㆍ차관 등 고위공직자 힘이나 재벌 가문 황태자의 권세를 흉내라도 내기 위해서는 유일한 고속 엘리베이터가 있었으니 바로 고등고시였다. 사법, 행정 그리고 외무고시 등 없는 집 아이라도 열심히 공부하면 팔자를 고칠 수 있는 통로가 있어 ‘개천에서 난 용’을 만들기 위해 많은 부모가 자식 공부 뒷바라지를 했다.

혹시 대학을 졸업시킬 만한 여력이 없는 부모는 상고나 공고로 자식을 보내 일찌감치 돈을 버는 길을 가르쳤다. 그들은 그곳에서 정진해 은행 간부도 되고 건설이나 기계 장인이 되기도 했다. ‘빽’이 없는 집안 아이들이 사는 길이었다.

그 후 50년, 국민소득 2만불 시대의 영화 뒤에는 부익부 빈익빈 음영이 짙게 자리하고 있다. 자본주의 팽창이 가져온 사회 양극화 현상에 대한 대처가 미흡한 결과였다. 부동산 투기로 졸부가 양산되고 재벌은 부를 세습하는 데 혈안이 되고, 권력자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공과 사를 혼동해 온 사이 선량한 대중은 신분 상승의 동아줄을 잃고 중산층에서조차 밀려나는 박탈감을 감수해야 했다. 이후 IMF 외환 위기 등 수차례 경제파동을 겪은 우리는 보편적 복지 대상 증가와 고령화 사회에 대한 준비 부족의 고통을 절감하고 있다.

비전 없는 교육정책의 결과 높은 대학 진학률은 학력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오히려 취업 걸림돌이 되고 있다. 사법시험 합격자마저 100%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해마다 늘어나는 고학력 청년 인재를 수용할 수 있는 취업 전선은 없고 생겨날 전망도 희박하다.

많이 배운 청년은 육체적으로 고달픈 일자리를 기피하고, 공부할 시간이 없는 취업 준비생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아르바이트에 의존해 침체의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런 때에 힘 있는 자의 파렴치한 이기적 행위가 가뜩이나 힘든 청년백수들을 탄식하게 하고 있다. 이른바 현대판 음서(蔭敍)의 부활이 그중 하나다. 2010년 당시 윤명환 외교부 장관 딸의 외교부 특혜 취업이 논란이 되면서 세상에 회자된 음서는 고려와 조선 시대 공신이나 고위 관리 자손에 대해 과거시험을 보지 않고도 관리로 임용한 제도를 말한다.

최근 여야 국회의원 자녀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 자격을 얻은 뒤 정부기관과 대기업에 채용된 과정이 논란이 되고 있다. 공개채용을 거치지 않고 편법으로 취업한 것은 어느 모로 봐서나 부모의 ‘빽’이 작용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이나 정부기관에 대한 특혜 취업이 매스컴을 타고 있을 뿐, 그에 못지않은 다양한 취업 청탁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세간의 지적이다. 대단위 권력노조 고용세습도 청년실업을 고착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되고 있다.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고위관료는 고위관료대로, 졸부는 돈을 써서, 노조는 투쟁의 칼을 휘둘러 바늘구멍만큼이나 좁은 취업의 문을 더욱 틀어막고 있는 것이 오늘날 현실이다. 이러니 가히 ‘빽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겠는가.

우리 시는 어떨까. 규제가 많은 기업 환경에서 토착 기업이 지방 정치인과 고위 관료의 청탁을 거부할 용기가 있을까. 오히려 관과의 유착이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또 정치권력의 비호 아래 자녀 취업을 위해 비정상적으로 기업의 뒷문을 두드린 지역 유지는 없을까.

최근 나 시장 아들이 지역 내 중견기업에 취업한 것이 알려지면서 이러쿵저러쿵 뒷말이 무성하다. 친기업정책을 표방하고 있는 양산시로서는 이런 의혹을 받는 일조차 없도록 해야 한다. 백수 신세를 한탄하는 젊은이들을 더욱 절망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소위 ‘빽’의 만행이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