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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분개해 판단하면 반드시 패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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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분개해 판단하면 반드시 패하리라”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5/09/01 09:27 수정 2015.09.01 09:23
강진상 평산교회 담임목사



 
↑↑ 강진상
평산교회 담임목사
 
서양에서 칭기즈칸의 이미지는 좋지 않지만, 1995년 12월 31일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과거 1천년 동안 인류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그를 선정했다.

대체로 세계의 정복자를 꼽으라면 칭기즈칸과 알렉산더를 꼽는다. 하지만 정복한 땅 넓이를 보자면 그 둘은 비교도 되지 않는다. 칭기즈칸은 몽골 제국 1대 왕으로 본래 이름은 테무친(鐵木眞)이고 몽골어로 ‘강철’을 뜻한다. 몽골지역을 완벽히 통일한 칭기즈칸은 1211년 중국을 정복하기 위해 나선다.

사막과 초원을 건너 만리장성을 정복했고, 황하 이북을 점령, 1215년에는 금나라 수도인 북경을 함락했다. 그 후에도 칭기즈칸은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카프카스, 러시아, 크림반도, 볼가강 유역의 동유럽까지 정복, 몽골통일 20년 만에 유라시아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한다.

이런 칭기즈칸의 업적은 그의 뛰어난 군대 때문에 가능했다. 칭기즈칸의 군대는 페르시아를 정복할 때 약 24만명, 중국과 러시아 유럽을 정복할 때는 각 15만명을 넘지 않았다. 당시 금나라 인구는 약 6천만명에 병사는 10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몽골군의 능력은 기동력과 조직력에서 나왔다. 보조부대를 제외한 모든 인원은 기병으로 구성돼 있었고, 10명, 100명, 1천명, 1만명으로 구성된 10진법 편제 아래 따랐으며, 부대장의 절대적인 권위 아래서 엄격한 군기를 지켰다. 기마 민족인 칭기스칸의 사람들은 3~4세부터 말을 탔고, 활을 비롯한 다른 무기를 훈련했으며, 유목민족의 삶은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가 세계적인 정복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탁월한 지도력에 있었다. 특히 리더로서 중요한 덕목인 인내와 관용에서 찾을 수 있다.

일례로 ‘칭기즈칸과 매’라는 이야기가 있다. 칭기즈칸은 항상 자신의 어깨에 앉아 있는 매를 친구로 생각했다. 어느 날 매 사냥을 나간 칭기즈칸이 사냥 중에 갈증이 났고, 한두 방울 흐르는 물을 발견했다.

약 5분 걸려 물을 받아 마시려는데 매가 잔을 엎질렀다. 처음에는 실수라 생각해 다시 물을 담았다. 하지만 또 잔을 엎었다. 세 번째, 칭기즈칸은 오른손에 칼을 쥐고 물을 받았다. 또 매가 잔을 엎지르자 단칼에 매를 베어 죽였다. 그러고 나서 물줄기 위를 보니 맹독사가 물 위에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칭기즈칸은 바로 후회하며 매를 금으로 박제했고 한쪽 날개에 ‘분개해 판단하면 반드시 패하리라’를, 다른 날개에 ‘좀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벗은 벗이다’를 새겨 넣었다. 이처럼 분노를 참고 인내함으로 훗날 많은 사람을 얻어 칭기즈칸은 대제국을 이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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