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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수 양산문화원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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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주 양산시민신문 창간12주년 기획기사로 1면과 6, 7면에 걸쳐 게재한 ‘우산 윤현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기사는 양산문화원장으로서 고마움과 민망함이 교차하는 기사였다.
양산시민신문이 광복 70주년을 계기로 기획한 윤현진 선생 추모와 선양사업 적극 추진에 대한 촉구와 제안은 양산문화원으로서는 반갑기 그지없다.
양산문화원은 2005년 생가터에 표지판을 설치한 이후 기념전시회와 유적 탐방, 달력 제작, 사이버 기념관 등을 진행했으나 지속적인 사업 진행은 물론 생가터 복원과 기념관 건립 사업은 엄두도 내지 못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란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과거는 미래를 담보하는 큰 교과서이기에 우리는 역사을 통해 배운다.
신라 충신 박제상 공이 양산 출신이기에 양산을 충절의 고장이라고 하듯이 그 지역 출신 인물은 지역민의 정신세계를 지배한다. 그 정신세계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 곁에 살아 숨 쉴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는 박제상 공 유적지 기념사업을 좌고우면하는 사이 유적지 복원사업에 대한 역사적 자산은 울산시에 선점 당하고 말았다. 이러한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부산시가 지난 2005년 ‘부산을 빛낸 인물’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윤현진 선생을 부산의 인물로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층 우리 마음을 조급하게 하는 것이다.
백 번 양보해 부산을 빛 낸 인물로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어디 선생이 부산만 빛낸 인물인가? 분명한 것은 선생이 양산에서 태어났으며 지금도 그 생가터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항일 독립운동에 격과 급수를 매길 수는 없는 것이지만 윤현진 선생은 안창호, 신익희 선생은 물론 백산 안희제와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는 걸출한 독립 운동가였음을 임시정부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안창호는 말할 것도 없지만 윤현진과 백산상회를 함께 경영했던 안희제는 항일운동에 관한한 의령의 중심인물이며 부산의 상징 인물이다.
부산 용두산공원에 세워진 백산 안희제 동상과 기념관을 볼 때마다 양산시민으로서 윤현진 선생에 대한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을 거둘 수가 없는 것이다.
5년 뒤면 윤현진 선생 순국 100주기가 된다. 지금부터라도 윤현진 선생에 대한 흩어진 사료를 모아 학술적 연구의 시작은 물론, 생가터 매입은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30만 양산시민의 정신적 자산으로 항일독립운동가 윤현진 선생 선양사업으로 기념관과 동상건립을 양산문화원과 양산시민이 함께 추진할 것을 양산문화원 이름으로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