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구 조정소식에
다양한 출마후보 거론된다
지역 정치인 다수 거론되는 만큼
시민과 밀착한 인물 나올지 몰라
중요한 것은 국비 조달 아니라
신념으로 무장한 리더십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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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진 논설위원 칼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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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운동기간 직전까지 전혀 알 수 없는, 그래서 깜깜이 공천이라고도 했다. 19대에 와서 지역 출신 윤영석 의원이 공천을 받았다. 상향식 공천이 어림도 없을 때인 20세기에 나오연 의원이 3선을 한 것도 나 의원이 중앙정부 고위 공직자 출신으로 정권 핵심부에 연줄이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차기 선거에는 순수 지역 활동가가 공천받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도 충만한 것은 사실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시민 뜻을 우선한 국민경선제 등 상향식 공천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인물들이 여야로 나뉘어 국회의원 배지를 두고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경쟁을 벌이는 것, 정말 보고 싶은 장면이기도 하다.
이른바 지역 정치인이 중앙 무대에 진출해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주민과 살을 부대끼며 애환을 함께한 사람은 그들의 고통과 애로를 이해하고 상처를 보듬을 수 있다. 나고 자라면서 성장의 현장을 함께한 자는 지역사회의 갈등과 구조적 모순을 누구보다도 깊이 실감할 것이다.
지역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본 사람은 양산이 지향해야 할 목표가 브레이크 없는 발전지향의 모습인지 자연과 주거의 조화를 통한 평화적 삶인지 기준을 정하는데 자신만의 신념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정치인의 중앙 무대 진출의 긍정적인 측면은 이런 것이다.
양산의 미래가, 지나치게 쉽게 다루고 있는 미래의 모습이, 토지의 용도를 구분하는 도시기본계획에 모두 담기는 것은 아니다. 인구가 늘어나고, 기업 매출이 신장하고, 차량과 도로율이 상승하며, 공동주택의 신규 분양광고가 거리를 덮는다 해서 양산이 살기 좋은 도시가 된다고 생각하는 시민은 얼마나 될까.
출근길이 편하고, 생필품을 취급하는 대형할인점이 늘어나 밤중에도 쇼핑할 수 있다고 해서 일자리 걱정하는 식솔의 한숨이 덮어지는 건 아니다. 경제학자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증가하는 생활 비용과 상대적 빈곤의 함수는 이미 물질로 뒤덮인 사회 본질의 문제가 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국회의원 임무가 국가 돈을 끌어다 주는 역할을 넘어 지역사회의 기형적 성장을 옳은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으로 바뀔 수 있다. 지자체에서 불필요한 대형사업을 추진하면서 부족한 재원을 정부의 곳간에 부탁하고 국회의원은 얼마를 끌어다주느냐로 능력을 재단 받는 전근대적인 행태는 차제에 지양돼야 한다는 말이다. 대부분 중소 규모 도시에서 기업체 증가를 경제성장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언필칭 초대형 산업현장의 유치는 그런대로 경제 활동의 증가로 순기능을 하기도 한다. 양산시가 수년 전 의료복합단지 유치에 열을 올린 이유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문 케이스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수천 개의 기업체가 등록돼 있지만 일부 몇 곳의 공업단지를 제외하고는 주거지나 야산, 농경지 주변에 산재한 소규모 공장이 대부분이다. 청정 자연지역을 난개발로 훼손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자체에서 주도하는 대형 공단들도 주변의 안락한 주거나 교육환경을 악화시키기는 마찬가지다.
국민의 사고에는 아직도 국회의원은 지역 정치인의 한 단계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방자치제도 시행으로 인해 시장의 위상이 크게 강화됐지만 지역 국회의원이라면 양산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미래지향적인 도시로 만드는데 방향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법에서 허용한 여러 가지 혜택과 특권에만 정신이 팔려 지역사회에서는 단체장보다 못한 대우에도 스스로 만족한다면 고장의 미래를 생각할 때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역의 미래 없이 국가의 장래는 없다. 21세기 시대적 요구는 분명하다. 시민과의 유대를 바탕으로 범부(凡夫)의 사고를 뛰어넘는 이상과 신념으로 양산을 이끌어갈 사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