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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임 희망웅상 홍보분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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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가 온통 서유럽사이니 나도 모르게 얼마나 대단할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참 대단하긴 했다. 베르사유 궁전은 그 끝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고, 루브르박물관의 작품은 질려서 머리가 어지러울 만큼 많았다.
내가 간 여행은 자유 배낭 여행상품이다. 다시 말해 목적지에서 그 부근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각자 흩어졌다가 일정 시간에 지정 정소에 만나 이동하는 형식이다. 따라서 설명을 잘 들어야 하고, 길을 잘 찾아야 하고, 사소한 문제들은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니 듣기능력이 부족하고 길치인 데다가 미리 공부도 하지 않은 게으른 딸아이와 나는 이래저래 참 많은 일을 경험했다.
그중에 가장 웃기면서도 슬픈 사건은 스위스 ‘인터라겐’이라는 도시에서 일어났다. 알프스 유람을 마치고 배가 고파 여행 책에서 맛집이라고 소개한 ‘슈’라는 곳을 찾았다.
스위스에 왔으면 대표 음식인 퐁듀는 먹어봐야 할 것 같은데 다들 치즈 퐁듀는 우리 입맛에 안 맞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뭘 시킬까 하다가 메뉴판에 초콜릿 퐁듀가 눈에 딱! 우리는 자신 있게 초콜릿 퐁듀를 외쳤다. 가격이 59프랑 우리 돈으로 7만원 남짓돈. 만만치 않지만, 워낙 물가 비싼 데고 2인용이니 뭐 그 정도는 부담할 만하다 싶었다.
웨이터가 초콜릿 퐁듀만 시키느냐고 해서 우리는 치즈 퐁듀는 안 먹는다는 의미로 단호히 예스를 외쳤고 잠시 기다리니 각종 싱싱한 과일 한 접시와 초콜릿 담긴 냄비를 갖다 주며 촛불을 켜줬다. 아 전채요리구나, 근데 이렇게 인심이 좋다니 전채요리치고는 과일이 좀 많았다.
게눈 감추듯 먹고 반쯤 찬 배를 부여잡고 본 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10분, 20분, 30분…. 우리보다 뒤에 온 옆 테이블 손님에게 먼저 음식을 갖다 주는 웨이터를 째려보며, 고기를 찍어 먹을 초콜릿이 딱딱해질까 봐 바람에 꺼지는 촛불을 켜가며, 왜 이리 늦냐고 하면 격 떨어진다 해서 묻지도 못하고 한참을 기다렸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웨이터를 불렀고, 이게 다냐 했더니 그렇단다. 오마이 갓! 세상에 이게 7만원이라니. 완전 불쾌해 하니 웨이터가 이상하다는 듯 계산서를 갖다 주는데 25프랑.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일단 값을 치르고 그 자리를 나와 생각해 보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우리는 그러니까 퐁듀 세트를 시켜야 했다. 초콜릿 퐁듀는 퐁듀 세트의 디저트였던 것이다. 초콜릿 퐁듀만 시키느냐는 웨이터의 말이 이제사 이해가 됐고, 시킨 메뉴 다 먹고 근 40분 넘게 촛불을 고이고이 켜 가며 앉아있는 동양인들을 힐끔거린 잘생긴 스위스 남자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니 참으로 웃기고도 슬펐다.
누가 여행이 자유롭다 했는가! 음식 하나 제대로 시켜먹지 못하는 우매한 우리는 그 부자유에 하루하루 지쳐가 여행 막바지에는 마음대로 시키고 마음대로 해 먹는 내 일상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돌아온 인천공항에서 우리는 힘껏 외쳤다. “여기 김치찌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