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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명숙 희망웅상 홍보분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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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오빠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성장해서 각자 가정과 인생을 살면서 명절이나 집안 행사 때가 아니면 서로 만날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여동생들은 다르다.
매일 단체 카톡 방에서 만나 출석체크도 하고 시답지 않은 문제로 논쟁한다. 또 때로는 중요한 문제를 의논하기도 하고, 심심할 때는 수다도 떤다. 그것도 모자라서 주말이면 이런저런 이유로 만난다. 주로 여행과 산행을 같이하고, 밥을 먹거나 쇼핑하기 위해서 만나기도 한다. 가끔은 특별한 목적 없이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자매들은 언제 어디서 만나도 재미있게 지낸다.
나와 동생들은 닮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닮아있다. 각자 개성이 뚜렷해서 삶을 대하는 태도, 가치관, 취향 등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공통으로 집중해서 좋아하는 것은 여행과 등산이다. 처음부터 동시에 좋아한 것은 아니지만 차례로 좋아하게 됐다.
지금은 네 자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대동단결해서 열심히 틈만 나면 여행과 등산을 다닌다. 그러다 보니 봄과 가을에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주말에 집을 비운다. 물론 남편과 같이 갈 때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남편이 바쁠 때는 혼자라도 동생들과 떠난다. 여름휴가도 동생들과 대부분 보내고 있다.
여행을 다니며 자연스럽게 각자가 맡은 역할이 정해졌는데 난 주로 음식을 조금 챙겨가는 일을 하고, 첫째 동생은 바리바리 음식을 싸가는 역할을 한다. 둘째 동생은 운전과 일정을 잡는 일을 맡고 있다. 그리고 막내는 전국 숙소를 뒤져서 예약하는 천재적인 소질을 개발해서 발휘하고 있다.
난 많은 노력을 하지 않고도 여행을 수월하게 갈 수 있다. 더불어 남편과도 여행을 자주 하게 됐다. 물론 동생들과 같이 가긴 하지만 그래도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많이 생겼다.
사실 어릴 때부터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시절에는 여러 가지 이유와 사건으로 치열하게 싸운 기억이 더 많다. 어릴 때는 형제가 많은 것이 지긋지긋하게 힘들었다. 그때 내 생각은 외동이 가장 행복해 보였다.
형제 없이 혼자일 때는 뭘 해도 독차지 할 수 있으니까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밥 먹을 때마다 장터처럼 시끌벅적했고 먹을 것과 입을 것 자는 것 의식주 전체가 전쟁터처럼 처절했다. 그 외,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내가 먼저 가지기 위해서 몸부림 쳐야 했다. 속옷, 스타킹 우산 등등 웃지 못할 헤프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같이 생활한 세월 동안 여러 가지 사건이 너무나 많았지만 지금은 기억도 희미해졌고 이젠 그것마저도 아련한 추억이 됐다.
이러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매들이 있어서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요즘 가끔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이 많이 든다. 동생들을 내 곁에 남겨 주신 것, 서로 잘 지낼 수 있게 키워주신 것, 이 모든 것이 감사하다.
나에게 부보님께서 물려주신 최고의 유산은 사랑하는 나의 형제를 남겨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