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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경섭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자연지리학(지형ㆍ환경체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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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시대적 분위기에 힘입어 그간 하천과 호소, 해안습지에 대해서는 연구와 보존 활동이 많이 이뤄졌다. 그러나 아직 산지의 고원습지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미약하다. 해안(海岸)ㆍ호안(湖岸)ㆍ하안(河岸)과는 달리 고원습지와 인근 해서는 많은 인구가 생활하거나 활동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고원습지는 자연생태계와 인간생활에 미치는 역할은 매우 크다. 만일 터키ㆍ이란 고원 습지들이 없다면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 유역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달도 없었을 것이다. 고원습지는 역작용이 큰 인공 댐을 만들지 않아도 환경훼손 없이 자연 스스로 인접 지역에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하므로 ‘녹색 댐’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고원습지는 만년설이 있을 정도인 3천m 이상 봉우리 줄이 있는 설산에서 계절적으로 눈이 쌓이고 녹음을 반복하는 고도에 잘 발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산들이 없는데도 동해에 인접한 지역 고도 1천500m 이하에서도 고원습지가 발달한다. 특히 국토 동남부 울산ㆍ간포 일대 동해안에서 밀양~삼랑진~물금에 이르는 산지에서는 고도 500m 정도인데도 고원습지가 분포하는 곳(예: 밀양 표충사 배후 사자평)이 있을 정도로 빈도 높게 발달해 있다. 이곳 산지는 가히 고원습지 지대라고 할 수 있다. 만년설이 발달할 정도의 산지가 아니면서도 이와 같이 고원습지가 발달할 수 있음은 우리 국토의 묘(妙)함이자 자랑이다.
이 지역 고원습지 발달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아열대 대양기단(북태평양기단)과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유라시아대륙기단이 이곳에서 빈도 높게 전선을 이루는 것과 관련 있다. 온도 차와 습도 차가 큰 기단이 만나는 곳에서는 안개비와 강수 현상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천성산 습지, 영남알프스 습지를 포함한 이곳 영남산지는 습도 안정으로 산지 생태계는 물론 산지 인근 곡지 들판에서 이뤄지는 농업과 인간 활동에도 큰 도움을 준다. 이곳 산지의 잘 발달한 낙엽수 군락, 양산시가 자리 잡은 산지 사이의 곡지가 별로 가뭄 피해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준다. 또한 영남알프스 고원습지는 태화강이 규모가 큰 강이 아니면서 울산시 용수 공급원 역할을 하는 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지역 산지 습지들은 람사르에 등록해 유엔 차원에서는 물론 지역 생태계 보전과 주민 삶의 질 관점에서도 보전해야 할 우리나라 자연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