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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희망웅상 행복한 세상] 이제 나도 독립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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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웅상 행복한 세상] 이제 나도 독립해야지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5/11/17 09:35 수정 2015.11.19 11:19
이강숙 희망웅상 홍보분과




 
↑↑ 이강숙 희망웅상 홍보분과
 
주말에 딸아이가 왔다 가고 나면 그 아이 머물렀던 자리에 눈길이 자꾸 간다. 지지배배 조잘대던 소리도 그 자리에 고여 있다. 밥 굶지 말고, 자기 보고 싶다고 울지도 말고 온 동네 할머니들 넋두리 다 들어 주지 말고, 이런 쓸데없는 잔소리들인데 옆에서 종알댈 땐 듣기 싫은데 가고나면 금세 그리운 소리가 돼 버린다.

큰 아이 작은 아이 둘 다 이 집 둥지를 떠난 게 2년 전이다. 이젠 신랑과 둘이 밥 먹고 둘이 영화 보고 조용히 각자 자기 할 일 하는 게 익숙해졌다. 첫해는 그러지 못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잤고 밥맛을 잃었다. 두 아이가 다 고등학교에 다니지 않은 데다 산골 작은 집에서 네 식구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절이 있어, 유별스레 아이들과 부대끼며 생활한 탓이다.

집 떠난 뒤 나는 아이들이, 밖에서 먹는 밥, 밤에도 시끄럽고 환한 도시, 새소리 없이 일어나는 아침, 엄마 없는 날들, 이런 것들이 적응이 안 돼 힘들다고 투정이라도 부릴 줄 알았다. 그런데 주말에 올 때마다 아이들은 새로운 생활이 좋아 죽겠다는 표정들이었다. 아, 이제 더는 내 무릎 아래, 슬하(膝下)의 자식들이 아니구나.

큰 아이는 여섯 살도 채 안 된 무렵부터 내게 말하곤 했다. 자기가 아빠 엄마를 골라서 내려왔고 그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웃어넘겼는데 뒤에 어떤 책에서 아이의 말을 그대로 읽었다. 모든 영혼은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태어나고 그 숙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적합한 부모를 스스로 선택하는 거라고.

그러니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지는 이미 아이의 영혼 안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고부터 나는 아이를 내 기호에 맞게 키우려는 모든 시도를 겸손하게 멈췄다. 내 뜻보다 훨씬 더 큰 힘, 더 높은 빛에 의해 아이는 잘 인도되고 있다는 굳건한 신념만이 필요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이들과 꽤 긴 여행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아이는 서울에서 시작한 초등학교를 경기도와 뉴질랜드, 상주 산골과 아빠 고향인 서창에서 끝마쳤다. 매번 함께 합의하고 결정한 것이긴 해도 너무 떠돌아다닌 건 아닌가, 내심 미안하고 불안했는데 아이는 자기도 아이를 낳으면 똑같이 해 주겠다는 말로 내 죄책감과 불안을 말끔히 씻어줬다.

얼마 전에 딸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을 보면 행복이 뭔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행복도 훈련이고 스스로 선택하고 경험하고 실패하고 책임지는 과정을 통해 배우는 것인데 학교에선 그런 것들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날 내가 “너는 행복이 뭔지 알아?”라고 물었더니 아이는 “나야말로 행복 전문가지”라고 대답했다.

이젠 아이들이 나보다 몸과 마음이 더 큰 사람들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에 아이들이 오면 어쩔 수 없는 엄마 모드 발동으로 치마가 짧다느니 머리색깔이 튄다느니 등 잔소리들을 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씨알도 안 먹히지만 엄마가 얘기하니까 들어는 드릴게요, 이런 표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내게 남은 엄마 역할 중 가장 훌륭한 것은, 아이들에게 그저 맛있는 밥을 지어 먹이는 일, 그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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