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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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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다
모두 그 말을 웃어넘겼다,
몇몇 학자들은
잠시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 김교수의 유머에 감사했다
학장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일 학기 강의를 개설했다
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장난삼아 신청했다
한 학기 내내 그는
모든 수업 시간마다 침묵하는
무서운 고집을 보여주었다
참지 못한 학생들이, 소리의 뼈란 무엇일까
각자 일가견을 피력했다
이군은 그것이 침묵일 거라고 말했다.
박군은 그것을 숨은 의미라 보았다
또 누군가는 그것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모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에 접근하기 위하여 채택된
방법론적 비유라는 것이었다
그의 견해는 너무 난해하여 곧 묵살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
모든 소리를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
기형도 시인(1960~1989)
인천 옹진 출생.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구체적 이미지로 우울한 체험과 관념 표현. 유고 시집 <입속의 검은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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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뼈’라니. 얼핏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이 시에서 ‘뼈’는 예사로운 말(言)이 아니라, ‘침묵’ 속에 깃들어 있군요. 이것은 시인이 세계를 향해 말하는 방식을 짐작하게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강의실에서 ‘소리’를 내는 사람은 교수, 듣는 사람은 학생이라 생각하죠. 때때로 학생들은 교수 말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잠을 자거나, 잡담을 나누죠. 그것은 교실에서 이뤄지는 일종의 규칙입니다.
그런데 이 ‘교수’는 ‘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학설을 발표하고, ‘한 학기 내내’, ‘모든 수업 시간마다 침묵하는/ 무서운 고집’을 보여줍니다. 교수가 보여주려는 ‘뼈’는 결국 ‘말 없는 말’ 속에 숨어 있는 ‘의미’일 것입니다.
즉 교수는 학생들에게 ‘소리’를 기다리게 하고, ‘그 다음 학기부터’, ‘더 잘’ 듣게 ‘침묵’을 한 셈이죠. 이것은 우리 삶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는 제 목소리를 드러내려 크게 떠들고, 나/너, 좌/우로 갈라져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진정 소통이 가능하겠습니까. 하고픈 말이 있어도 때로는 침묵할 것, 그것이 말의 위의(威儀)를 지키는 한 방법, 이것이 바로 시인이 말하려는 ‘소리의 뼈’일 텐데… 생각해 보니 그 뼈가 나에게로 향하는 것 같아 아프게 다가오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