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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희망웅상 행복한 세상] 간장 꽃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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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웅상 행복한 세상] 간장 꽃게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5/12/01 09:36 수정 2015.12.01 09:30
박주현 희망웅상 홍보분과



 
↑↑ 박주현
희망웅상 홍보분과
 
가을이 막 시작될 무렵 마트 한편에서 싱싱한 꽃게를 싼 가격에 팔고 있었다.

순간 홀린 듯 카트를 세차게 밀어 아줌마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제법 통통하게 살이 오른 녀석들을 골라 집으로 왔다.

어느덧 나에겐 간장게장을 담그겠다는 나름의 야무진 포부가 머릿속에 찬란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온갖 사이트를 뒤져 맛있는 간장게장 담그는 법을 두루 섭렵한 다음 갖가지 부재료까지 장을 봐 온 터라 준비는 완벽했다.

헌데 막상 손질하자니 위협을 느낀 녀석들이 ‘어디 건드리기만 해봐’라는 심사로 그야말로 거품을 물고서 양발을 하늘로 높이 치켜세웠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전사의 자세로 대응하는 꽃게 군단에게 움찔한 나는 녀석들의 집게발에 손가락이라도 물릴 새라 덜컥 겁이 났고 결국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다.

남편은 호기롭게 한 손엔 집게와 한 손엔 가위를 들었지만, 날이 서 있는 꽃게와 사투를 벌여야 했다.
처음에는 허둥대더니 어찌어찌 날카로운 양 집게발 제거에 성공했고 나는 그런 남편이 새삼 멋져 보였다.
그것도 잠깐, 잘린 집게발로 버둥대고 있는 꽃게를 보자 갑자기 쓸데없는 질문이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고 말았다.

“여보 그렇게 자르면 꽃게가 아프지?”

나의 어이없는 질문에 남편은 가위를 든 채로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답을 아주 조심스레 말했다.

“당연히 아프지…” 

아…! 그 순간부터 갑자기 모든 게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어쩌자고 이걸 사 왔을까? 아니 손질해 달라고 해서 된장국이나 끓이면 되는데…
후회가 물밀 듯 밀려 왔지만 이미 모든 상황은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반쯤 기절한 꽃게를 수돗물에 담가 솔로 등딱지며 배를 구석구석을 씻으면서 이건 그저 자연의 섭리라는 최면을 스스로 걸어봤지만, 별반 효과가 없었고 “미안해 애들아 정말 미안해”를 마구 남발해 가면서 그 과정을 마쳐야만 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둘째가 슬그머니 내 곁에 와서 이렇게 와서 속삭이는 게 아닌가!

“엄마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이라는 시가 있는데 나 그 시 읽고 울었어. 엄마도 그 시 읽음 간장게장 어쩜 못 먹을지도 몰라”

나는 딸을 째려보며 말했다.

“몰라! 나는 그 시 절대 안 읽을 거야!”

나는 결국 며칠 후 이 시를 읽어 버렸고, 간장게장을 먹을 때마다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게 내어 준 15마리 꽃게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나의 생존을 돕는 데다 어디 그뿐인가? 간사스러워진 입맛을 맞추기 위해 한 생명체의 죽음을 순교임이라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감상적인 발상이 아니라 생각하게 됐다.  

신념으로 채식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그들의 신념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살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세상에 녹아 있어서 당연하게 생각한 많은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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