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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박성진 논설위원 칼럼] 응답하라 추억의 시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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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논설위원 칼럼] 응답하라 추억의 시대여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5/12/01 09:39 수정 2015.12.01 09:34



 
↑↑ 박성진
본지 논설위원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인기는
따뜻함이 존재했던 시절에 대한 추억
물질적인 풍요와 발전의 뒤안길에서
오히려 각박해진 우리 삶을 돌아보며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본다
나눔과 배려가 절실한 연말을 앞두고


한 케이블 방송국 드라마 ‘응답하라’시리즈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3년 전 ‘응답하라 1997’로 시작한 이 복고풍 감성 드라마는 최근 세 번째 시리즈인 ‘응답하라 1988’로 다시 한 번 마니아를 탄생시키고 있다. 연작이 만들어지면서 점점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극에서는 윤택하고 풍요로운 삶보다 팍팍한 세태 속에서도 따뜻함을 잊지 않는 소시민 생활을 그대로 보여줘 각박한 현대인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미 만들어진 극본이 아니라 여러 작가가 그때그때 시청자 반응을 살피고 숨겨진 이야기를 끌어내 극 중 에피소드로 형상화하는 방식이 제대로 먹혀든 것 같다. 보는 사람들 가슴에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추억과 회상이 함께하니 그 동화(同化)가 자연스러운 것이리라. 거기다 연기자들의 정감 어린 사투리 연기가 감칠맛을 더한다.

많은 사람이 연속극을 보면서 타임머신을 탄다. 1988년 그때가 우리 황금기는 아니었지만 그 시대는 상징적으로 추억의 중심에 서 있다. 어쩌면 우리가 잊은 지 오래인 사람 냄새를 느끼게 해줘서 인지도 모른다. 가난과 궁핍은 일반적이라 그다지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골목 흙먼지를 함께 마시며 뒹굴었던 친구들에게 집안 살림 형편은 도긴개긴이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참가비를 내지 못하는 급우의 비용을 대신 내주는 부잣집 아들 이야기도 당시에는 흔한 미담이었다. 어려운 집안을 일으켜 세운 ‘개천에서 난 용’ 이야기가 회자하면서 많은 고학생의 의지를 북돋우기도 했다.

‘응답하라’ 드라마에서는 필시 우리 주변에 있었을 법한 가족의 모습을 재현해보이기 때문에 공감 폭이 넓다. 또 예나 지금이나 갈등 원인이었던 ‘나쁜 사람’이 등장하지 않아 즐거운 드라마다. 일명 막장 드라마 필수 요건인 음모와 편법, 불륜과 패륜, 시기와 보복 등 갈등 구조를 배제한 작가의 의도는 더욱 빛나 보인다. 외국 건전한 가족 시트콤을 연상시키는 밝은 소재의 훈훈한 드라마가 시청률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복권 당첨으로 일약 졸부가 됐지만 이웃의 어려운 사정을 외면하지 않는 부인과 부자가 되어도 궁핍했던 시절을 잊지 못해 돈 쓸 줄을 모르는 남편, 빚보증으로 재산을 날린 샐러리맨이 반지하 셋집에서 세 자녀와 살지만 이웃들과 소주 한 잔에 애환을 씻고, 프로 바둑 기사 아들을 홀로 키우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해 머뭇거리는 아빠 이야기는 애써 과장할 필요도 없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들 자식들 이야기도 우리가 돌아가고 싶은 추억의 시절이다. 카세트 라디오 하나, 엘피판 한 장이면 놀 수 있었던 시절, 잠시 궤도를 이탈하더라도 다시 원위치로 돌아올 수 있도록 가슴으로 가르치는 어른이 있어 절망은 없었다. 어린아이의 성탄절 소원인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맑은 하늘을 원망하다 끝내 얼음 덩어리로 눈사람을 만든 동네 어른들의 희화는 가슴 뭉클한 우화로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과거회귀형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 현상은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 사회가 그만큼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국민소득이 몇 배로 뛰어올랐지만 자신이 잘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타인과 비교하는 상대적 빈곤감이 팽배하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자식 단속에 집안 감시까지 가능한 시대지만 물질 풍요만큼 행복지수는 올라가지 않는다.

가족 사이 대화는 사라지고 사회 제도에 대한 불신과 정부의 무능한 정책에 대한 원망이 커진다. 정치와 정치인을 혐오하고 종내에는 국가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다. 가장 나쁜 시나리오다. 이런 반문명적인 진전을 예방하기 위해 사회 전반에 걸친 이해와 포용 정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응답하라 1988’의 추억은 실제 그 연대적 배경인 1988년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아니다. 군사독재의 어두운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공을 들여 유치에 성공한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그해가 상징적으로 차용됐을 뿐이다.

삶의 형편이 나아진 것과는 반대로 나눔과 배려의 마음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시대에 대한 아쉬움이 복고 드라마를 만들어냈고,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건지 돌이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 히말라야 고산 기슭에서 험난한 일생을 사는 부탄 국민의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통계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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