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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명숙 희망웅상 홍보분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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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릴 때부터 할머니께서는 나를 많이 예뻐하고 귀여워해 주셨다. 요즘도 집안 행사로 삼촌과 고모들이 모여 할머니 이야기를 하게 되면 나를 예뻐해 주신 에피소드가 끊이지 않는다.
할머니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음식과 어딘가에서 가져다준 음식 맛이 같이 떠오른다. 할머니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시고 이웃집 잔치에 다녀오시곤 했다. 다녀오시면 하얀 손수건에 노란 고물과 연두색 고물로 만든 인절미를 챙겨와 나에게 주시곤 했다. 그때 그 인절미 맛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 잊을 수가 없다.
또 겨울 방학에 가면 할머니께서 가을에 따놓은 홍시를 장독에 넣어두었다가 고모와 삼촌 몰래 주기도 하셨다. 차갑고 달콤한 홍시 맛은 세상 최고 맛이었다. 그때 그 맛 때문인지 가을만 되면 홍시를 즐겨 먹고 있다.
할머니께서는 조청도 자주 만들어 주셨는데 조청을 방학이 아닐 때도 가끔 만들어 부산으로 가지고 오셨다. 단 음식이 흔하지 않던 시절 조청은 과자를 먹고 싶은 욕구를 해소하기 충분했다. 특히 조청과 땅콩을 버무려 같이 먹으면 고소하면서 달달해 멍해질 만큼 특별한 맛이었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고 또 먹고 싶어지는 먹거리다.
반찬 중에서는 감포항 근처에서 잡아온 가자미를 꾸덕꾸덕 말려서 조림으로 만들어 주셨는데 그 맛은 간장게장 밥 도둑 보다 더 센 밥 도둑이 아닐까. 그 맛을 아직 잊을 수가 없다.
할머니의 여러 가지 모습이 있었을 것인데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 모습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쪽 머리에 비녀를 꽂으신 단아한 모습이다. 아담한 체격에 한복은 참 잘 어울렸다.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 모습은 세상을 다 품을 것 같은 넉넉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내 어린 시절은 할머니와 추억이 부모님과 추억보다 훨씬 더 많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하지만 엄마의 기억은 달랐다. 엄마에게 할머니는 무섭고 냉정한 시어머니였다. 그토록 자상한 할머니께서 당신 며느리에게는 혹독한 시집살이를 시키는 시어머니였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도 한참 세월이 흐른 뒤였다. 그즈음에 나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니 시어머니 집에 얹혀서 살고 있었다. 시집살이라는 매운맛을 제대로 느끼며 살 때였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할머니에 대한 감정이 나에게 이입이 돼 이 세상에 계시지도 않는 할머니가 갑자기 밉기도 하고 배신감마저 생겼다. 우습게도 그때는….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뿐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따뜻하고 자상하게 남아있다. 어떤 조건도 의무도 요구하지 않는 사랑, 여한 없이 받기만 한 사랑, 이 나이가 돼도 그 사랑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