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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진 본지 논설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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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악마성 보여준 사례
좀더 빨리 막을 수 있었지만
불완전한 시스템ㆍ관심 부족으로
사전에 막지 못했던 책임 통감해
모두가 감시자 역할 다해야
온정을 나누는 소식이 넘쳐나야 할 연말에 국민은 인천에서 일어난 11세 소녀 학대 사건으로 가슴 먹먹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친아버지에 의해 2년 이상 감금돼 굶주림과 폭행에 시달리다 2층에서 가스 배관을 타고 탈출해 동네 슈퍼에 나타나 허겁지겁 과자를 먹는 잠옷 차림 소녀의 야윈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보여진 그날, 많은 국민은 할 말을 잊고 사건 추이에 귀를 기울일 따름이었다.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수많은 매스컴과 전문가들은 원인을 분석하기 바쁘고 앞다퉈 처방을 내놓는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순식간에 가해자인 친아버지와 동거녀, 그리고 그 친구라는 여인은 ‘천하의 몹쓸 O’으로 사이버상에 도배되고, 소녀가 진작 학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그녀가 다니다 만 학교와 살았던 곳 주민센터가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런가 하면 아직 상황이 완전히 조사되기도 전에 이미 여론재판이 횡행해 아버지는 최고 징역 15년 이상 처할 수 있다는 예상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다. 사뭇 돌팔매질할 만한 대상이 나타나기 기다렸다는 듯 뭇매를 가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어디 사람의 탈을 쓰고 할 짓인가. 검거 당시 잘못을 부인하던 친아버지는 뒤늦게 검찰에 송치되면서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딸에게 할 말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묵묵부답이었다. 진심으로 뉘우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검찰이 기소 단계에서 친권 상실도 함께 청구할 것이라는 보도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대목이었다. 모든 아동 학대 사례에서 보듯 아이 문제는 필연적으로 부모 문제이기도 하다.
동거녀로부터 친아버지 A씨 자신도 아동 학대 피해자였다는 진술이 나와 범죄 연관성을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전력과 변명에도 자신의 앞가림을 위해 친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한 채 굶기고 폭행한 처사는 국민의 지탄을 피할 수 없고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만행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을 때 우리 사회 안전장치는 얼마나 제 기능을 하고 있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니만큼 학생의 장기결석이 이어질 때 학교 측은 당연히 실태를 조사해야 한다. 인천 학대 소녀의 경우 담임교사가 몇 차례 가정방문 해 무단 전출 사실을 파악했고 경찰에 실종신고 가능 여부를 알아보기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식 신고가 아니라 문의에 그쳤고 찾으려는 노력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리고 잊혔다. 장기결석을 한 사례는 교육부 보고가 이뤄지지만 그것도 1년이 지나면 숫자만 남을 뿐 대책 없이 방치되는 것이 현실이란다. 이래서야 의무교육이란 말이 헛구호가 아니겠는가.
아동학대 가해자 중 70% 이상이 친부모라는 사실은 이미 낯선 일이 아니다. 신고 되지 않거나 신고 됐더라도 가벼운 훈계로 다시 가정으로 돌아간 아동들이 부모에게서 계속해서 학대받는 것은 사회 문제로 발전한다. 대부분 학대 가해자는 스스로 과거 학대 피해자였다니 악습의 악순환인 셈이다. 다시 말하면, 학대받고 큰 아이들이 자라나서 비슷한 유형의 학대 가해자로 발전하고 있는데 비춰 사회 대응 전략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가정폭력에 대한 신고사례가 저조한 것은 우리 민족 가부장적 사고와 남의 집안일에 대한 방관 의식이 작용하고 있다.
서양과 달리 개인주의 의식이 비교적 엷은 우리는 담장 너머 일에 모른 척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설령 신고를 해서 경찰이 출동하더라도 집안일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훈방으로 끝나기 때문에 신고를 한 당사자가 곤란한 경우가 허다하다. 신고를 피하는 이유다.
인천 11세 소녀 학대 사건을 보면서 새삼 우리 사회의 비정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온전한 성인 세 사람이 아직 세상을 향해 채 피기도 전인 어린 소녀의 꿈과 희망을 저렇듯 철저히 짓밟을 수 있을까 하는 분노와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위안이 된 것은 슈퍼 주인이다.
그녀의 신고가 없었다면 어린 소녀 고난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가 없다. 우리 주변의 어둡고 외진 곳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많은 제2, 제3의 인천 소녀를 찾아내 밝은 세상으로 끌어낼 수 있도록 관심을 두고 돌아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