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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각 스님 통도사 기획국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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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몽골 초원을 달리는 말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시작한 삭막한 바람이 채 가시지도 않은 이른 새벽부터 사람들은 떠오르는 태양에 소원을 달아 붙이기 위해 두터운 방한복으로 몸을 감싸고 눈만 내놓은 채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발을 동동 구르며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이윽고 붉은 해가 새벽 바다를 벌겋게 물들이면서 말쑥한 얼굴로 세상을 비추기 시작하면 저마다 함성을 지르면서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거나 폰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아침 햇살에 붉게 보이는 얼굴표정도 각각이듯 소망하는 바람도 가지가지일 것이다.
학생들은 올해는 열심히 공부해 좋은 성적을 올리자는 소원, 셋방살이하는 사람은 빨리 내 집 마련이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 개구쟁이 꼬마들은 부모님한테나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용돈 두둑이 받아서 오락기 한 대 장만하는 것이 소원 아닌 기대감으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해를 바라본다.
어쨌거나 모든 소원을 다 들어주실 듯한 밝은 해님은 부처님 얼굴같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온갖 소망을 전부 담아서 가볍게 두둥실 풍선같이 올라간다. 사람은 누구나가 모두 꾸미지 않은 자연이 보여주는 순수한 모습에서 경건하고도 진실한 마음이 일어난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고 부처를 만나며 희망도 만나고 사랑도 만난다.
연말에는 동창회, 회사망년회, 각종 계모임 등으로 시끌벅적하게 한 해를 마무리 짓고 나서 새해에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일을 무언가에 알리고 싶은 것이 인간의 순수한 종교적인 본능인 것 같다. 그래서 옛날 선사시대부터 태양을 숭배하는 종교행위가 가장 보편적이고 자발적으로 생겨나지 않았을까 하고 가볍게 생각해 본다.
어슴푸레한 새벽녘에 붉게 올라오는 태양의 모습도 찬란하지만 서쪽 수평선을 넘어가는 저녁 석양도 일출 못지않게 장엄하다. 마치 아침 해는 소년의 가슴처럼 뜨겁게 느껴진다면 저녁 석양은 인생을 달관한 노인네 미소같이 부드럽게 느껴진다. 떠오르는 붉은 해에게 소원만 바랄 것이 아니라 저녁 하늘을 누렇게 물들이고 넘어가는 석양을 보면서도 계획했던 일이나 살아온 인생도 아름답게 마무리를 잘 지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