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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희망웅상 행복한 세상] ‘가슴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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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웅상 행복한 세상] ‘가슴으로 가는 길’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6/01/19 10:06 수정 2016.01.20 09:25







 
 
결혼 후 남편과 더불어 시어머니를 알아가는 과정이 숙제로 자리 잡았었다. 애당초 나를 며느릿감으로 탐탁지 않게 생각한 어머니는 속내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드러내셨다. 그럴 적마다 당황한 건 기본이었고 서운해서 많이도 울었었다.

게다가 어머니 독특한 성향은 일찍이 알고 있던 주변 그 누구에게도 보지 못한 것이라 기가 막힌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했다. 엄마와 아내이기보다 여자가 되고 싶은 어머니는 당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 외모 가꾸기에 시간과 열정을 쏟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유흥을 즐겼다.

세상 어머니들과 사뭇 다른 어머니와 지낸 3년간 시집살이는 그야말로 험준한 산을 넘는 것과 같았다. 이해를 바라는 남편의 간곡함이 버팀목이 돼 지내긴 했지만 내겐 항상 묵상 그 자체였다.

그런 어머님이 이제 팔순을 앞두고 계신다. 여전히 손녀들을 만나면 안부나 덕담이 아니라 어떤 옷을 입고 신을 신었는지 머리는 어떤 스타일인지 눈으로 먼저 쭉 훑으신 후 행여 당신 마음에 드는 구두라도 신은 날엔 ‘아이고 예뻐라. 할머니도 이런 신발 신고 싶은데…’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 한다. 25년이란 세월이 흘러도 여전한 어머님을 이해하려 애쓰는 건 가슴이 아니라 머리였다.

그러던 지난해 가을 소화불량에 속 쓰림이 잦은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게 됐다. 그날 난생처음 화장기 없는 얼굴로 대문을 나서는 어머니를 봤다. ‘수수하고 할머니 같은 모습을 얼마나 고대하고 살았던가!’ 그런 어머니가 반가울 만도 한데 불안한 마음이 불쑥 들었다.

그날은 왠지 기운도 없어 보이고 꼿꼿한 허리가 굽어보이면서 많이 편찮으신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가벼운 위궤양이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부쩍 늙어버린 어머니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누구나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 있다. 그 방법 중 어머니는 외모를 가꾸고 당신에게 집중하는 것으로 존재를 알렸다. 당신이 가장 자신 있고 잘할 수 있어 가능했다. 이기적이고 철 없으며 한심해 보이던 것이 어쩌면 자신의 모양대로 솔직하게 살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오랫동안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다.

태중에서부터 당신이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을 나의 잣대로 세상의 잣대로 끊임없이 요구했는지도 모른다. 물고기는 하늘을 날 수 없고 새는 깊은 바다 속에서 헤엄칠 수 없듯 어머니에겐 누군가를 지켜주고 보살피고 책임지는 능력은 없었다.

대신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잘 아는 더듬이가 발달한 것. 그런데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됐으니 미약한 부분을 다른 것으로 상쇄시켰는지 모른다.

어머니가 건강하신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을 잘 돌봤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을 향해 있는 더듬이가 있어 가능했다. 살고자 하는 에너지와 살아내려는 에너지가 아직도 있기에 어머니는 오늘도 거울 앞에 앉을 수 있다.

곱게 분을 바르고 머리를 빗고 화려하게 피어난 자신의 모습에 당당한 발걸음을 옮기신다.

이제 곧 설날이 다가온다. 어머니는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자식들 안부가 아닌 당신의 안면홍조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으실 거다.

이제 어머니의 이런 이야기들은 흥얼흥얼 당신의 노래처럼 들린다. 음정도 박자도 맞지 않아 때론 불편해서 고개 돌리게도 하지만 ‘나에겐 이런 노래가 있어’하고 당신만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노랫말이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가슴으로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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