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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상 평산교회 담임목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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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께서는 누구를 보내면 그 일을 가장 잘 감당하겠느냐고 물으셨지 해호가 신과 원수 사이가 아니냐고 물으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평공은 해호를 남양현 현장으로 임명했고 해호는 기황양의 말대로 부임한 후 그 고을 사람을 위해 유익한 일을 많이 했다.
얼마 후 평공은 또 기황양을 불러 “현재 조정에 법관이 필요한데 누구를 임명하면 그 일을 잘 감당하겠소?”라고 물었다. 그러자 기황양은 주저 없이 “기호가 그 직책을 잘 감당해 낼 것으로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평공이 또 놀라며 “아니, 기호는 그대의 아들이 아니오? 그대의 아들을 추천해서 남의 군소리를 듣지 않겠고?”라고 말했다.
“대왕께서는 누가 그 일을 잘 감당하겠느냐 물으시기에 제 아들을 추천한 것이지 제 아들이 아니냐고 물으시지 않으셨습니다” 평공은 기황양의 말대로 기호를 법관으로 임명하자 많은 사람의 호평을 받으며 일을 잘 감당했다. 원수라고 해서 편견을 두거나 아들이라고 해서 꺼리지 않는 기황양은 공평무사의 표본이다.
웹스터 사전에는 편견을 간단하게 정의하는데, 그것은 ‘미리 정해진 판단’이다. 사실을 잘 쳐다보고 판단한 게 아니라 미리 판단해 사실을 대하는 것이다. 선입관, 그것이 곧 편견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17세기 영국의 경험론 창시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우상론’에서 인간의 마음속에는 동굴, 종족, 시장, 극장의 우상으로 모두 네 가지 편견이라는 우상(idola)이 도사리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노예다.
영국의 비평가 버나드 쇼가 영국 사회를 관찰해 본 결과 한 가지 편견을 발견했다. 그것은 미켈란젤로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로뎅의 작품을 굉장히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러한 편견을 교정하기 위한 계획을 갖고 그의 집에서 파티를 열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청을 했다. 만찬이 무르익어 갈 무렵 버나드 쇼가 마이크를 잡았다.
“제가 여러분에게 아주 귀한 그림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서 그림을 하나 가지고 와서 걸었다. “여러분, 멋있지요? 이것이 로뎅의 작품입니다” 장내가 조용해지더니 웅성웅성 하기 시작하고 이어 편견에 사로잡힌 혹독한 비평들이 쏟아져 나왔다. “야, 색깔이 왜 저 모양이냐!” “그래, 맞지? 우중충하지?” “어떻게 구도가 저 모양이냐?” 급기야는 “저것도 그림이라고 그렸나?”
이러한 난도질이 거의 끝나갈 무렵 버나드 쇼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아! 여러분,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그만 그림을 잘못 갖고 나왔네요. 이 그림은 로뎅의 작품이 아니라 미켈란젤로의 작품입니다” 그러자 장내가 다시 숙연해고 그들은 할 말을 잃었다.
이처럼 편견은 사실을 사실로 진리를 진리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편견에 사로잡혀 회복해야 할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단절된 채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상처를 심어준다.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