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이지양 양산YMCA 사무총장 | ||
ⓒ 양산시민신문 |
“선생님, 믹서가 고장 났어요. 안 돌아가요”, “선생님 다리미에 데였어요”
순간 강의실은 난장판이 됐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수원YMCA에서 초등학교 어린이 지도를 맡았던 나는 지구사랑과 환경문제를 글로만 배운 초짜 실무자였다. 지구를 살리자면서 재생종이를 만드는 실험을 한다고 믹서를 고장 내고, 다리미로 엄청난 전력을 써대던 왕초보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지구를 생각하며 탄소발자국을 계산하고, 원전 1기를 줄이는 우리 집 실천방법과 지구 온난화를 고민하고, 에너지 제로 마을을 설계하는 머릿속 지식은 그냥 수업시간 전달용이었다. 깊은 고민도 없었고 내 속의 가치가 삶으로 연결되고,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세월이 훌쩍 지나 양산으로 왔고 여전히 아이들, 대학생, 시민과 만나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가치와 삶 사이를 헤맨다. 양산YMCA에는 책모임이 있다. 작년에 초등학교 민주시민교육을 했던 강사가 모여 격주로 책을 읽고 그 느낌을 나누는 모임이다. 최근에는 계속해서 소비하라는 거대한 자본주의 속성과, 덩달아 소비하게 만들고 돈을 숭배하게 하는 자본주의 속성을 잘 짚어 낸 EBS 자본주의 제작팀의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라는 책을 함께 읽고 소감을 나눴다.
이날은 이런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살면서도, 그 삶의 형태를 따라 살지 말아야겠다는 자기반성의 시간이 되고 말았다. 여전히 우리는 당장 안 사면 저 싸고 좋은 것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홈쇼핑 쇼 호스트 유혹에 자주 굴복하고, 2개 묶음이라면 다 먹을 수도 없는 양의 식품이라도 일단 사고 보는 습관에서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결국 가치의 문제는 삶의 형태를 사유하게 하고 판단하게 하고 반성하게 한다.
온통 선거 이야기다. 컷오프 결과, 경선 결과로 수많은 희비를 본다. 그리고 또 덮어놓고 한쪽을 찍는 사람들의 성향을 고민한다. 왜 사람들은 좀처럼 한 번 정한 정당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지 못할까? 항상 사람으로, 정책으로 투표하자고 하면서도 한 번도 그 사람의 정책이나 사람됨을 꼼꼼히 읽어보지조차 않을까? 당과 상관없이 모든 후보들의 공약이 오십보백보라서 그럴까? 아니면 우리가 꼼꼼히 읽지 않아서일까? 나는 환경 문제는 첨예하게 자신의 가치를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늘 개발과 환경은 날 선 대립을 하는데 그것은 그 안에 존재하는 가치가 늘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환경은 타자를 위한 윤리와 가치를 바탕에 깔고 있다. 공생의 문제고 또한 미래세대 행복을 걱정하는 일이다. 돈만을 숭배하는 추악한 자본주의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것이다. 양산은 난개발 문제를 안고 있다. 도시 디자인에 대한 깊은 구상 없이 거대한 아파트 숲이 도시성장의 상징인양 내 것도 아닌 아파트 숲에 만족을 강요당하고 있다. 결국 또 선택의 문제에 선다. 모두가 양산을 위한다고 하지만 이것이 자본가를 위한 것인지 노동자가 함께 잘사는 세상을 위한 것인지 판단은 결국 가치인 것이다.
‘글’로 환경을 배운 사람이 아닌 ‘삶’으로 환경을 실천하는 사람인지 결국 꼼꼼히 그 사람과 정책을 읽어볼 수밖에 없겠다. 그래서 오늘도 또 공부한다. 책모임이 있는 날이다.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에 이어 이번에는 책모임에서 오늘은 한나 아렌트의 ‘이스라엘의 아이히만’에 도전한다.
악의 평범함이란 주제를 제시한 쉽지 않은 책이지만, 정치체제안에 그저 무심히 방관자로 흘러가는 우리 민낯을 또 반성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