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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양 양산YMCA 사무총장 | ||
ⓒ 양산시민신문 |
하지만 2주기가 되고 세월호 진상규명 청문회가 열려도 그 답을 속 시원하게 알 수가 없다. 방송에서 제기한 세월호 실소유주가 국정원이라던데 정말일까? 처음 도착한 해경123정은 구조에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청와대 보고를 위해 사진 찍고 구조 인원 숫자 세는데 귀중한 시간을 다 쓴 건가? 등 이런 질문이 대안언론, 독립언론, 인터넷 SNS를 통해 퍼져 나갈 때도 설마 정부가 그랬을까 하는 순진한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순진한 믿음과 시간의 망각은 세월호 유가족들과 이러한 질문을 지치지 않고 제기하는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세월호를 이용하는 악의 무리로 몰아가는 마녀사냥과 합쳐지며 그저 사고인데 호들갑을 떤다는 불편함과, 안타깝지만 애써 기억할 것까지 있냐는 또 하나의 빅데이터 흐름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특례입학, 사상 최대 보상금, 세월호 인양에 드는 천문학적인 예산 등 기사를 내보내는 보수 언론의 부추김도 한몫했다. 특히 안산에서 지리적으로 멀어질수록, 추모와 분노 강도가 약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단순히 거리의 문제일까? 구조의 골든타임이 다 지나가고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사라지기 5분 전에 “단 한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를 내린 대통령의 초췌한 얼굴에 더 측은지심을 느끼며 선거 때마다 같은 색깔로 지역을 나눠 색칠하는 지역주의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2년 전 나는 거의 한 달을 장례식장에서 보냈다. 안산YMCA 단원고 청소년동아리 TOP친구들도 수학여행을 떠났고 성복이, 은지, 영은이, 제훈이, 주희, 미지는 돌아오지 못했다. 안산 온 장례식장이 교복 입은 학생들이었고, 영정사진을 들고 화장터까지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며, 덩치 좋은 남학생들이 결국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고 이들을 오히려 위로하는 상복 입은 부모님을 그저 바라만 봤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4월 16일이 다가오면 그 깊은 슬픔이 자꾸 나를 가라앉게 한다. 그러나 4월 16일 온종일 카톡방을 통해 전송돼 온 전국 청소년들의 추모 사진이 세월호를 수면으로 들어 올리고 있다. 각자 방식으로 바람개비, 노란리본을 만들고, 침묵의 기도를 하고, 행진하고, 안산에서 모여 단원고 기억의 교실을 돌아보기도 하면서 세상을 향해 질문한다. 도대체 친구들이 돌아오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결국 이 질문은 선거로 이어졌고, 정치는 발 빠르게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논의하겠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끈질긴 질문이다. 최근 가장 많이 회자하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저자 한나 아렌트 역시 제2차 세계대전이 지난 뒤 유대인 학살 소식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설마 진실일까 하는 순진한 믿음이 깨지고 난 뒤, 유대인 학살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이후 그녀는 예정된 대학 강의를 취소하고 미국 잡지 뉴요커 특파원 자격으로 재판에 참관해 엄청난 양의 기사를 쓴다. 여기서 아무 생각 없이 무사유적으로 받아들여 우리 안에 존재하는 악의 평범성을 제기했다.
거대 자본의 미디어는 우리를 획일적이고 생각 없이 만든다. 세월호 역시 잠깐 들끓는 여론 후에 잠잠해질 것이라 믿고 싶은 세력들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를 밝히고자 하는 끈질긴 질문만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지난 15일 양주중학교 친구들이 세월호 추모대회에서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손팻말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그 답을 들을 때까지 바쁜 일상과, 무관심과 무사유와 망각이라는 괴물 앞에 맞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