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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희망웅상 행복한 세상] 까치와 생선..
오피니언

[희망웅상 행복한 세상] 까치와 생선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6/04/26 11:19 수정 2016.04.26 11:19













 
↑↑ 고세영
희망웅상 홍보분과
ⓒ 양산시민신문 
아침에 일어나 아이와 창밖을 내다봤다. 새들이 마당에 찾아와 놀다 가곤 하는데, 오늘은 까치 한 마리가 총총 거닐고 있었다. 아이가 “아~ 저 까치 작년에 만났던 그 까치인가 봐! 다시 찾아왔나 봐!”하며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지난해 이맘때쯤 밖에서 놀던 아이가 뛰어들어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가보니 어린 까치 한 마리가 나무 밑에 떨어져 있고 나무 위에는 다른 까치들이 목놓아 울고 있었다. 누워서 날개를 파닥이지도 못하기에 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는 어서 병원에 데리고 가자고 성화였다. 그 마음을 져버릴 수 없어서 급하게 동물병원을 여기저기 찾았다.



다들 새는 치료해줄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고 한군데서 상태를 봐주긴 했는데, 한쪽 눈은 심하게 부어있고 다른 쪽은 눈알이 없었다. 게다가 떨어지면서 그랬는지 꽁지깃이 꺾여있었다. 아마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는데 둥지를 떠날 때가 되자 결국 잘 날지 못하고 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아이는 안타까워하며 까치를 데리고 돌아와 종이상자에 짚을 깔고 뉘었다. 매일 수시로 물과 미숫가루를 조금씩 떠먹였다. 누워서도 받아먹기 위해 애쓰는 까치를 보며 우리는 응원했다. 그렇게 일주일쯤을 버티다 어느 날 아이가 학교에 간 사이 까치는 눈을 감았다. 아이는 까치가 자는 거 아니냐며 못 믿겠다는 듯 당황스러워했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생명을 가진 누구도 피할 수 없고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나는 어떻게 설명해줘야 좋을지 순간 아득해졌다. 우리는 말없이 마당 한쪽에 까치를 묻어줬고, 몇 달이 지나 아이는 그 자리를 파봤는데 아무것도 없었다며 까치 몸이 흙이 된 것을 신기해했다. 지금도 우리는 기도하며 소원한 대로 까치가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 하늘을 맘껏 날고 있으리라 믿고 있다.


몇 주 전 아이와 나는 친정어머니를 따라 장구경을 나섰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빨간 비늘을 가진 고기 몇 마리를 사셨고, 아이는 자기도 먹고 싶다고 졸라 두 마리를 얻었다. 남편과 나는 채식을 하기에 아이가 생선을 집에서 맛보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할머니 댁에 가면 손자 건강을 걱정하시는 할머니 정성으로 종종 먹곤 한다. 그리고 나는 자식을 안 챙겨 먹이는 못난 엄마가 돼 구박을 먹는다.


얻어온 생선은 아이의 몫이기에 직접 씻어 손질해보라고 했다. 그런데 물에 몇 번을 이리저리 씻는가 싶더니 갑자기 싱크대 앞에서 엉엉 우는 것이다. 물고기 한 마리를 두 손에 들고서, “흑흑…. 넌 왜 나한테 왔니? 왜 잡혀서 여기로 왔니? 안 잡혔다면 바다에서 친구들과 헤엄치며 다닐 텐데…. 왜 나에게 와서 먹히는 거니?”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었다. 아이는 생선을 처음 먹어보는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좋아하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그러나 아이에게 그 물고기는 토막 나서 먹기 좋게 굽혀 식탁위에 올라오는 생선이 아니었다. 죽은 물고기 몸을 만지고 눈을 보면서 비로소 그 동물도 자기와 똑같이 살아있었다는 걸, 잡히지 않았다면 아마 바다에서 신나게 살 수 있었다는 걸 느끼고 소스라친 것이었다.


생명에 대한 아이의 본능적인 감수성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나 역시 생명에 대한 존중심을 가지고파 채식을 시작했지만 이미 오랜 습관들로 인해 무뎌진 부분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런데 아이는 관습적으로 육식을 해왔지만 생명을 느끼는 섬세함과 예민함은 순수하게 가지고 있었던 거다. 그런 아이의 모습이 예뻐서 몰래 웃다가 다시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날 밤 아이는 마당에 물고기를 고이 묻어줬다.


가끔 엄마 아빠는 왜 채식을 하는지 물으면 이렇게 저렇게 답해주곤 했다. 하지만 나는 채식하는 삶에 진실로 무엇이 담겨야 하는지 아이에게 다시 배운다. 나는 우리 모두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삶을 소망한다고 믿는다. 그렇지 못했던 지난 세월 동안 서로 아파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에 태어나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에 대한 정중함을 되도록 간직하며 살고 싶다. 오늘 나의 삶은 어떤지 아이의 순수한 마음에 수시로 비춰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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