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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각 스님 통도사 기획국장 | ||
ⓒ 양산시민신문 |
그러다가 시절인연으로 산사에 들어와 살 때였는데 계절은 바야흐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7월 초였다. 통도사는 총림이라 많은 스님이 공부하고 계셨다. 처음 절에 들어가면 행자 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이 기간은 철저한 하심(下心)과 묵언(默言)으로 지내야할 때다.
소임은 주로 후원(後院-사회에서는 식당)에서 일하게 되는데 공양(供養-식사) 때가 되면 대중스님들에게 공양 시중드는 일을 해야 한다. 먼저 큰 주전자에 깨끗한 물을 담아서 들이고 이어서 밥과 국, 반찬들을 들여 넣고 기다리고 있으니 죽비치는 소리와 함께 조금 있다가 방금 들여 넣었던 밥과 국 그리고 반찬들이 도로 나온다.
벌써 식사가 끝났나 하는 의아심에 밥과 반찬을 살펴보면 덜고 남은 것이 곧바로 나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대중스님들이 식사하는 큰방에서는 고요한 정적만 흐르는데 죽비치는 소리만이 간헐적으로 크게 울리고 합송으로 뭘 외우는 소리만 들려온다.
대체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방문을 열고 들여다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한 15분쯤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 큰방에서 옹기 항아리에 맑은 물만 담겨져 나오고 그러다가 다시 죽비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스님들이 우루루 나오더니 처소로 돌아가신다.
먼저 입산한 윗행자에게 물어보니 식사가 끝났다고 한다. 방금 전에 큰방에서 식사하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는데 언제 드셨단 말인가. 참으로 그동안 사회에서 보아왔던 스님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상상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두터운 관념의 장벽이 깨어져 혼돈의 파편들을 치워 버리기 전에 여름철이라 수박공양이 많이 들어와서 여기 저기 각 처소에 배달하기 위해 참선하는 선원에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적정한 분위기가 물씬 밀려오는데 눈을 들어보니 스님들께서는 큰 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참선하고 있었다. 산에는 푸른솔에서 맑은 바람이 흘러나오고 지저귀는 산새소리만 고요한 선방을 채우고 있는 가운데 선정에 들어 있는 스님들 모습은 이 세상 사람같이 보여지지 않았다.
인간세상에 이렇게 고고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는가하는 놀라움에 곧바로 동경심과 신심이 우러나왔다. 그 이후로 좀 더 깊은 수행과 공부를 해오면서 오늘날까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보아왔고 심오한 경전과 여러 전적들을 열람하면서 아직까지 도를 이루지 못했지만 입산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정신세계를 대략적이나마 이해하고 산다는 것만 하더라도 이번 생은 충분히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사람은 자기보다 더 크고 훌륭한 사람들과 교유하거나 옛 성현들께서 남기신 말씀을 가슴에 새겨서 자신도 그만한 정신세계에 흠뻑 빠져들어 봐야지만 정말로 상대의 영혼을 울릴 수 있는 말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논어 학이편에 “군자무본(君子務本),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이라 했다. 사견을 붙인다면 “사람은 자신의 인격 완성에 힘써야 한다. 마음의 중심이 서면 올바른 길이 보일 것”이라는 성인의 가르침이 이 시대에 충분이 경종을 울릴만한 말씀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해 가고 있다. 맑은 바람이 달빛을 씻어내어 청아한 밤 나는 어디서 왔고 나는 누구인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오래된 질문을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