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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희 본지 편집국장 | ||
ⓒ 양산시민신문 |
19세기 제정 러시아 시대 간수들이 죄수들에게 강제로 게임을 시킨 뒤 누가 먼저 죽을지 내기한 데에서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이 위험천만한 게임은 자신의 담력을 자랑하거나 운을 시험해 보기 위해, 또는 내기의 일환으로 계속됐다.
또 하나의 생명이 사라졌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안전문을 정비하다 한 젊은이가 숨졌다. 이제 19살, 더 많은 꿈을 이루기 위해 사회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당한 좌절이다.
얼마 전에는 서울 지하철 강남역 노래방 건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한 젊은 여성이 이유 없이 살해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눈 뜨면 새롭게 들리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뉴스 들여다보기가 무서울 지경이다.
사람들은 모여 산다. 무리 지어 사는 행태는 인류가 나타난 이후 오랜 세월 이어온 역사문화적 특성이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유는 단순하다. 외부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서로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혼자가 아닌 우리로 살아가는 이유다.
하지만 요즘 세상을 보면 과연 우리가 함께 모여 사는 이유를 실천하고 있는가라는 물음표가 머릿속을 채운다. 차라리 깊은 산 속 혼자 사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라는 헛된 생각이 꼬리를 문다. 서로 불신하고 경쟁하는 사회, 러시안룰렛과 같은 사회다. 차라리 러시안룰렛은 공정하다. 서로 한 번씩 공평한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공평하지 않다. 임시직으로 기본적인 안전수칙조차 지키지 않는 사회에 홀로 내던져졌다 소중한 생명을 잃은 젊은이에게 세상은 공평하지 않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생각지도 못한 죽음을 맞아야 했던 젊은이에게도 공평한 세상은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 좌절을 경험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본래 러시안룰렛은 한 자루 권총을 앞에 두고 돌아가며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모든 이들이 저마다 한 자루 권총을 들고 상대를 향해 총알이 발사될 때까지 총을 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총이나 총알도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여유가 있었다면 다른 직업을 선택했을지 모른다는 말을 남긴 정치인이나 여자가 밤늦도록 술이나 마시고 다니니 사고를 당한 게 아니겠느냐는 사람들의 수군거림 모두 또 다른 피해자를 찾아 헤매는 총알처럼 발사되고 있다.
억울하게 희생된 젊은이 장례식장을 찾아와 행패를 부린 보수단체 사람들이나 강남역에 마련한 추모공간에서 여성을 조롱하는 시위를 벌인 사람들 모두 불공정한 러시안룰렛에 참여하고 있다. 언젠가 총알이 누군가를 향하거나 심지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한자에서 사람을 나타내는 인(人)은 서로가 기대있는 형상을 본뜬 것이다. 사람은 처음부터 홀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기댄다는 의미는 사람이 단순히 무리로 뭉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보다 가치 있는 존재로 서로에게 힘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공동체’라고 불러왔다.
러시안룰렛같은 요즘 사회에서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일이 부질없이 여겨지기도 하지만 눈 뜨면 들리는 가슴 아픈 사연 모두 온전히 우리 몫이다. 함께 풀어야 할 숙제라는 말이다. 당장 나와 내 가족에게 닥치지 않아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어느 순간 러시안룰렛 총알처럼 닥칠 수 있는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며 다시는 이런 불행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른 이의 아픔을 자신 일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다수다. 구의역과 강남역에 스스로 모여 젊은이들을 추모하는 사람들 마음 한구석에는 “만약 내가 거기에 있었다면”이라는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의 죽음을 개인적이고 우연한 사고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로부터 보호받고 위로받지 못한다”는 불안감은 사람이 모여 사는 이유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공동체를 이뤄 사는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단순하다. 자신을 보호하고 서로 이익을 얻기 위해서다. 이제 우리가 고민하고 해야 할 일 또한 단순해지길 바란다. 자신을 보호하고 이익을 얻기 위해 총을 들 것인가? 손을 잡을 것인가?
연이은 사건ㆍ사고 앞에서 이미 많은 사람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나와 상관없을지도 모를 죽음에 사람들은 추모와 공감을 표현하고 있다. 누군가 문제를 해결해 주기 전에 자신이 먼저 나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쏟아내고 있다.
물은 99℃가 될 때까지 액체상태로 남아 있다. 100℃가 돼야 비로소 기체로 변한다. 많은 이가 변화를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가 변하지 않고 불행을 반복하는 것은 마지막 1℃를 채우지 못한 탓은 아닐까? 그리고 그 마지막 1℃가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만 총을 내려놓고 러시안룰렛을 끝낼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