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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역사공원, 연병호 선생 알리는 첫걸음”..
기획/특집

“역사공원, 연병호 선생 알리는 첫걸음”

양산시민신문 기자 mail@ysnews.co.kr 입력 2016/06/28 10:47 수정 2016.06.28 10:47
■ 양산지역 역사 인물 선양 사업 본격화… 다른 지역은?
연병호 선생 태어나고 순국한 생가 기념물 지정해 보존
이달 중 항일역사공원 완공해 역사 교육 현장으로 활용

살아 있는 모든 것에는 뿌리가 있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우리는 그 뿌리를 무시하고 살아갈 수 없다. 현실이 안정적이기 위해, 또 더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뿌리가 튼튼해야 하고 뿌리의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많은 이가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 나라의 뿌리, 선열들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부끄러운 현실을 지금이라도 바로잡기 위해 각 지자체에서는 지역 출신 역사 인물에 대한 선양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양산에서도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인 우산 윤현진 선생에 대한 선양사업 필요성이 제기됐고 양산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가 출범하며 본격적인 선양사업에 나섰다. 이번 기획보도에서는 지역 인물 선양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는 지자체 사례를 통해 앞으로 양산 역사 인물 선양사업이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 충청북도 기념물 제122호로 지정된 연병호 선생 생가는 증평군에서 진행한 정화사업으로 초가집 원형이 유지되고 있으며 생가 옆에는 선생을 기리는 사당과 공헌비 등이 있다.
ⓒ 양산시민신문


양산, 위대한 역사를 기억하다

<글 싣는 순서>



① 오페라와 호수공원으로 시민 곁에 살아숨쉬는 울산 대표 독립운동가 ‘박상진’ 의사 기념사업
② 항일역사공원으로 연병호 선생 기개 알린다 충북 증평군 ‘연병호’ 선생 기념사업
③ 시민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함석헌 선생 기리는 서울 도봉구 ‘함석헌’ 선생 기념사업
④ 양산의 위대한 역사ㆍ인물 어떻게 시민에게 알릴 것인가?



충청북도 증평군은 지난해부터 오랫동안 가려졌던 애국지사 연병호 선생을 재조명하기 위한 사업을 본격 진행했다.


증평군은 우선 지난해 12월,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와 공동으로 ‘증평 출신 곡산 연 씨 독립운동 조명’이란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학술대회에서는 연 선생을 20여년 국내와 중국 만주 등에서 괄목할만한 독립운동 자취를 남기고도 오랫동안 가려졌던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라고 소개했다.



또한 연 선생 업적 가운데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진 한민국청년외교단,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신한독립당 활동 외에도 ‘연병학’이라는 이름으로 만주 독립군에 참여한 사실을 비롯해 군자금 조달, 청년단체 활동 등 다양한 선생의 독립운동 자취를 재조명했다. 무엇보다 선생 업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한 선양사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 연병호 선생 생가와 바로 연결된 항일역사공원에 있는 상징 조형물. 위에서 내려다보면 태극 모양인 화단에 설치돼 있으며 연 선생의 동상과 함께 그가 1920년 독립신문에 기고한 ‘독립기념일의 말’로 꾸며져 있다.
ⓒ 양산시민신문


태어나고 서거한 생가 원형 보존 앞장




증평군은 특히 연 선생이 태어나고 성장한 동시에 말년에 이곳에서 살다 생애를 마친 생가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 122호로 선정돼 보호받고 있는 생가는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 작은 초가집으로 건립됐다.



지붕 등 일부 모습이 변형됐지만 1986년 옛 모습을 고증해 복원하는 정화사업을 통해 지금까지 초가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생가 주변에는 연 선생을 비롯해 지역 출신 애국지사를 기리는 비(碑)와 추모비, 기념비 등이 들어서 있다. 또 연 선생을 모시는 사당(명덕정사, 明德精司)를 지어 해마다 선생을 기리고 있다.


정화사업에 이어 증평군은 생가 인근 3만304㎡ 터에 45억원을 들여 ‘연병호 항일역사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이달 중 준공 예정인 항일역사공원은 연 선생 성장 과정과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모아 놓은 전시실과 가로 10m, 높이 4.5m 규모 조형물, 잔디마당, 광야원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 지난 5월, 증평군은 연병호 선생 일가 독립운동에 대한 화보집을 발간해 시민 대상으로 한 홍보활동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양산시민신문
연 선생 독립운동 기리는 ‘항일역사공원’ 조성




항일역사공원 ‘태극혼’이라 불리는 상징조형물에는 연 선생 동상과 함께 선생이 1920년 독립신문에 기고한 ‘독립기념일의 말’이 함께 적혀있다.



특히 생가와 공원을 연결하는 산책로인 ‘독립운동의 길’은 연 선생의 자(字, 본래 이름 대신 부르는 이름)인 순서(舜瑞)에서 ‘순(舜)’ 자가 무궁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무궁화를 심고, 산책로에서 바로 이어지는 ‘겨레의 꽃 정원’에는 민족성 말살 차원에서 무궁화를 없애려 했던 일제강점기 당시 기록을 소개하는 등 국화인 무궁화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기 위한 장소로 꾸며졌다.



이밖에도 지난 5월 연 선생 동생인 연병환, 연 선생의 딸 연미당 등 일가가 독립운동에 참여한 이들의 독립운동 행적에 대한 기록과 현재까지 선양사업 진행 과정을 기록한 화보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증평군은 “어느 때보다 올바른 역사인식이 중요한 시기”라며 “항일역사공원 준공을 통해 지역 애국지사에 대한 선양사업을 본격화하고 또 공원을 활성화할 수 있는 각종 체험프로그램을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증평을 대표하는 항일 독립운동가 연병호 선생을 비롯해 가족 모두가 독립운동에 헌신한 만큼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다양한 방법으로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김민희 기자 minheek@y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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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민신문


중국 일대 누비며 대한독립 위해 청춘 바쳤다



임시정부 후원하는 군자금 확보 앞장



연병호(1894~1963) 선생은 1910년 맏형인 연병환을 따라 중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 수립 후 조국에 돌아왔다.


연 선생은 경성기독교청년회관(YMCA) 영어과 재학 중 안재홍, 조용주 등과 교류하며 독립운동을 결심, 임시정부 후원과 국제외교를 위한 ‘청년외교단’을 결성했다. 연 선생은 청년외교단을 통해 외교원을 상해, 일본 정부 등에 특파해 국가 독립을 요구했으며 당시 임시정부 내무총장 이동녕 위촉을 받아 ‘독립운동 참가 단체 조사표’, ‘독립운동에 즈음한 피해 의사 조사서’ 등을 조사ㆍ보고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다 1919년 11월 청년외교단과 애국부인회가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한다는 사실을 경상북도 경찰에게 들켜 많은 단원이 체포당했다. 이때 연 선생도 함께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인 1921년 다시 중국으로 망명해 북경에서 ‘독립혁명당’을 조직했으며 이듬해 임시정부 의정원의원으로 활동하면서 한인들의 대동단결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세계한인동맹’과 ‘유호청년회’, ‘시사책진회’ 등에 동참했다.


1923년 베이징으로 건너가 한중연합체인 ‘동서혁명위원회’를 조직한 연 선생은 1925년에 다시 활동무대를 만주로 옮겨 신민부에서 활동하며 군자금 확보 등에 힘을 쏟았다. 그는 1929년께 난징으로 자리를 옮긴 후 ‘한국국민당’을 결성하고, 1934년에 재만한국독립당과 합당해 ‘신한독립당’으로 통합 발전하는 데 이바지했다.



같은 해 임시의정원 충청도 의원으로 뽑혀 1935년 10월까지 임시정부에 참여했다. 그러나 1937년 일제 앞잡이였던 상해거류 조선인 이갑녕 회장 저격사건으로 일본경찰 추적을 받던 연 선생은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제헌, 제2대 국회의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1963년 1월 그의 생가에서 순국했다. 이후 정부는 연 선생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했다.


홍성현 기자 redcastle@y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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