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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함석헌 자취 묻은 터, 주민 위한 열린 공간으로..
기획/특집

함석헌 자취 묻은 터, 주민 위한 열린 공간으로

양산시민신문 기자 mail@ysnews.co.kr 입력 2016/07/05 10:41 수정 2016.07.05 10:41
■ 양산지역 역사 인물 선양 사업 본격화… 다른 지역은?
마지막 여생을 보낸 집 보존해 선생 사상 알리는 기념관으로 재탄생
전시실, 게스트 하우스, 세미나실, 도서관 등 주민 커뮤니티로 활용

살아 있는 모든 것에는 뿌리가 있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우리는 그 뿌리를 무시하고 살아갈 수 없다. 현실이 안정적이기 위해, 또 더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뿌리가 튼튼해야 하고 뿌리의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많은 이가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 나라의 뿌리, 선열들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부끄러운 현실을 지금이라도 바로잡기 위해 각 지자체에서는 지역 출신 역사 인물에 대한 선양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양산에서도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인 우산 윤현진 선생에 대한 선양사업 필요성이 제기됐고 양산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가 출범하며 본격적인 선양사업에 나섰다. 이번 기획보도에서는 지역 인물 선양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는 지자체 사례를 통해 앞으로 양산 역사 인물 선양사업이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 함석헌 선생이 여생을 보낸 집은 서울시 도봉구 역사 문화재 보존 정책에 따라 2015년 함석헌기념관으로 재탄생했다.
ⓒ 양산시민신문


양산, 위대한 역사를 기억하다
<글 싣는 순서>



① 오페라와 호수공원으로 시민 곁에 살아숨쉬는 울산 대표 독립운동가 ‘박상진’ 의사 기념사업
② 항일역사공원으로 연병호 선생 기개 알린다 충북 증평군 ‘연병호’ 선생 기념사업
③ 시민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함석헌 선생 기리는 서울 도봉구 ‘함석헌’ 선생 기념사업
④ 양산의 위대한 역사ㆍ인물 어떻게 시민에게 알릴 것인가



서울시 도봉구에 있는 함석헌기념관은 함 선생이 1983년부터 1989년 돌아가실 때까지 7년 동안 살았던 집이다. 기념관은 도봉구청이 유족으로부터 집을 매입하고 리모델링해 지난해 9월 문을 열었다.


도봉구청은 주민이 활용할 만한 관광 인프라가 지역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는 도봉구 곳곳에 숨겨져 있던 역사와 문화 자원을 찾았다. 거기서 주민 문화 욕구를 충족할 수 있고 자긍심까지 심어줄 수 있는 관광 자원을 개발하기로 한 것. 그렇게 2013년 ‘도봉구 역사문화관광벨트 조성 사업’을 시작했다.


역사문화관광벨트 하나로 도봉구청은 함 선생 뜻을 기리고 주민에게 그의 업적을 알리기 위해 2013년 유족과 함석헌기념사업회 협약을 거쳐 기념관 건립을 추진했다.

















↑↑ 기념관 주변 315m 도로를 ‘함석헌길’로 명명해 선생 업적을 기리고 있다.
ⓒ 양산시민신문


함 선생 유품과 육성이 담긴 동영상 전시



기념관은 크게 두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함 선생이 생활했던 지상 1층은 전시실로, 창고로 사용했던 지하 1층은 주민 활용 공간으로 구성한 것.


전시실에 들어서면 함 선생을 소개하는 연보가 벽면에 놓여 있어 그의 삶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전시실 한쪽에는 함 선생이 공부하고 독서했던 방을 부분적으로 재현했으며 선생이 생전 소장했던 책과 그가 쓴 저서, 옷과 책상 등 생활용품 400여점 등 유품이 그대로 전시돼 있다.



이외에 함 선생을 비롯해 지인과의 관계를 정리한 전시물과 선생이 세계 평화를 위해 발표했던 ‘평화 호소문’과 ‘서울평화선언문’ 등이 전시돼 있어 죽는 순간까지 우리나라 안녕을 기원한 함 선생 활동을 되돌아볼 수 있게 했다. 이외에도 생전 육성이 담긴 강의 동영상을 재생해 누구나 그의 정신을 되새길 수 있도록 했다.

















↑↑ 기념관에는 선생이 생전에 쓰던 물건과 선생이 쓴 저서, 선생이 받은 상 등을 전시했으며 일부는 주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 양산시민신문














↑↑ 기념관에는 선생이 생전에 쓰던 물건과 선생이 쓴 저서, 선생이 받은 상 등을 전시했으며 일부는 주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 양산시민신문














↑↑ 기념관에는 선생이 생전에 쓰던 물건과 선생이 쓴 저서, 선생이 받은 상 등을 전시했으며 일부는 주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 양산시민신문














↑↑ 기념관에는 선생이 생전에 쓰던 물건과 선생이 쓴 저서, 선생이 받은 상 등을 전시했으며 일부는 주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 양산시민신문


주민 위한 쉼터 공간과 게스트하우스 운영



지하로 가면 ‘주민 커뮤니티 공간’이라는 팻말을 볼 수 있다. 주민이 소규모 모임을 할 수 있는 세미나실, 정기적으로 신간이 들어오는 도서 열람실, 함 선생이 거주했던 가옥을 체험해보는 게스트 하우스, 함 선생이 가꿨던 식물을 전시하고 주민 누구나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유리온실이 있다.



게스트 하우스만 유료로 운영하며, 나머지 공간은 다 무료로 개방돼 있다. 최근에는 기념관 차고를 주민 동아리나 지역 예술가가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전시관으로 바꿔 무료 대관하고 있다.


도봉구청은 기념관 개관에 맞춰 기념관 주변 315m를 ‘함석헌길’로 이름을 붙여 주민 누구나 ‘함석헌’이라는 이름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노력했다.


올해 초에는 기념관과 기념관 주변에 있는 김수영문학관, 연산군묘, 정의공주묘, 방학동 은행나무, 둘리뮤지엄, 전형필 가옥 등 지역 관광명소를 주민과 관광객 모두 재미있게 탐방할 수 있도록 ‘스탬프 투어’와 문화해설사가 동행하는 ‘역사문화탐방’ 등 프로그램을 운영해 교육장소로도 활용하고 있다.


도봉구청은 “구경만 하는 곳에서 벗어나 주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기념관이 자리를 잡았고 전시관까지 생겨 주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며 “주민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청소년이 살아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기념관을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희 기자 minheek@ysnews.co.kr















↑↑ 서울시 도봉구는 함석헌기념관을 비롯해 도봉구 내 있는 역사 문화재를 ‘도봉구 역사문화관광벨트’로 활용하고 있다. 김수영문학관, 둘리뮤지엄, 연산군묘 등 8곳을 연결해 방문객이 스탬프 투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 양산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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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석헌 선생
ⓒ 양산시민신문


독재에 쓴소리 뱉은 시대의 진정한 어른



민중계몽운동에 앞장선 참지식인



함석헌(1901~1 989) 선생은 평안북도 용천 출생으로, 인권운동가, 독립운동가, 종교인, 시인이며, 언론인, 역사가, 교육자 등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했다.


1919년에는 3.1운동에 참여하며 평양보통고등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그 후 오산학교에 들어가 안창호, 이승훈, 조만식으로부터 민족주의 사상 영향을 받았다. 오산학교 졸업 후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해 귀국 후에는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했다.


자유당 정권이 들어서자 재야 중심인물로 활동하기 시작해 1956년부터 ‘사상계’에 본격적으로 논설을 집필했다. 그는 이어 한일협정 반대 단식, 3선개헌과 국민투표 반대운동 등을 벌였다.


1970년 ‘씨알의 소리’를 창간,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서 많은 글을 발표하는 한편, 독재반대 투쟁과 민권운동을 펴나갔다. 1974년에는 윤보선, 김대중과 함께 민주회복국민회의를 만들었다. 1979년 명동 YWC A사건으로 계엄사에 끌려가 15일간 구속되기도 했다. 1984년부터는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고문을 지냈다.


1987년에는 제1회 인촌상(동아일보사)을 받았고 1988년에는 서울올림픽 평화대회 위원장으로서 ‘서울평화선언’을 제창했다. 말년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건강악화로 1989년 2월 4일 별세했다. 그 후 문화관광부가 함 선생을 ‘이달의 문화 인물’로 추천했고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


홍성현 기자 redcastle@y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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