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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신남 시인 양산문인협회 회원 | ||
ⓒ 양산시민신문 |
이성복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푹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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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하는 태양 아래 초록 잎이 무성한 여름날 배롱나무 가지에서는 붉은 꽃이 한창이고 매미는 제 할 일 다 하며 목청껏 울고 있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끝이 있는 법이지만 폭풍의 한가운데서도 꿈쩍없이 떨어지지 않는 열매들은 꽤나 든든한 내실을 다졌다는 것, 뿌리 또한 튼튼해 바람으로 흔들릴 뿐 쓰러지지 않는다.
한 가지에서 꽃잎이 피고 지고 수많은 바람과 비에 시달리면서도 백일동안 붉은 꽃들을 피워내고 있어 백일홍이란 이름을 가진 배롱나무꽃은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의 말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꽃을 피운다는 것이 곧 절정에 도달한다는 것이고 그 절정에서의 끝이 열매를 맺는 일이며 그 이전에 파국을 맞을 만큼의 위험도 있지만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만큼 서로 다부지게 엮어서 서야 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붉은 기운을 전하는 배롱나무꽃처럼 젊음이 주는 장난 같은 여름날의 사랑, 쉽게 시작해서 쉬이 끝나버리는 그런 사랑이 아닌 내실을 견고히 다져 서서히 뜨거워 붉은 기운을 전하는 그런 사랑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