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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열린 칼럼] 누가 이 청년을 모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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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칼럼] 누가 이 청년을 모르시나요?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6/08/30 09:31 수정 2016.08.30 09:31













 
↑↑ 전대식
양산시 문화관광해설사
ⓒ 양산시민신문 
지난 8월 12일 양산시립박물관에서는 눈길을 끄는 유물이 공개됐다.


양산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재무차장을 지낸 우산 윤현진 선생의 미공개 유품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날 공개된 유품은 선생의 손자인 윤석우 씨가 양산시립박물관에 기증한 100여점의 유품 중 일부이다.



상해임시정부 시절 양산의 어머니께 보낸 친필 편지를 비롯하여 당신의 호인 ‘右山’이 새겨진 뿔도장, 일본 메이지대학 유학 시절의 사진과 부인 엄정자 여사의 사진, 함께 독립운동을 하던 동지인 신익희 선생이 해방 후 국회의장을 할 때 선생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 1959년 춘추공원에 선생의 기념비를 세울 때 경봉 스님과 구하 스님, 지영진, 최학선 선생의 추모글 등이다.


특히 ‘어마님 젼 상셔’를 따라 읽어가다 보면 말 한마디 없이 망명길을 떠나 1년 만에 소식을 전하며 죄송함과 어머님의 건강을 염려하고 당신도 병으로 고생했다는 부분에서는 가슴이 짠해지면서 다급했던 망명길과 선생의 건강이 썩 좋지 못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선생의 백씨(伯氏)가 이듬해 동생의 묘 앞에 세운 ‘윤현진 묻음’이라고 쓰인 한글 묘비의 흑백사진은 한참 동안 보는 이의 발걸음을 붙들어 놓는다.


우리는 이러한 윤현진 선생을 너무 모르고 지냈다.


선생은 부유한 명문가에서 태어나 엄청난 재산을 다 털어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 분투하다 병을 얻어 29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요절했다. 최근 뒤늦게나마 양산지역 언론과 양산박물관, 양산문화원 등 여러 기관단체에서 선생 선양사업에 활발하게 나서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너무 짧은 생애를 살다 가신 분이라 관련 자료가 너무 없어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번에 시립박물관에서 확보한 자료의 질과 양이라면 따로 기념관을 꾸며도 될 것 같다. 좀 더 일찍 선생의 후손들과 접촉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후 선생 선양사업이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선생이 아낌없이 희사한 사재(私財)의 백 분의 일만 투자를 해도 학술대회, 생가복원, 동상 건립 등 선양사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두운 시대의 등불과 같이 살다 간 우산 윤현진 선생은 양산이 낳은 대표적인 청년 독립운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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