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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들려주는 인문학 이야기] ‘망치’의 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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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들려주는 인문학 이야기] ‘망치’의 철학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6/08/30 09:45 수정 2016.08.30 09:45













 
↑↑ 김순아
시인
양산문인협회
ⓒ 양산시민신문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주장을 펼쳐 20세기 유럽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19세기 독일 철학자다. 그는 이전까지 서구 유럽에서 신봉해왔던 관념철학이나 이를 토대로 한 기독교적 신을 부정하고 존재에 대한 새로운 논리를 펼쳐왔다. 그래서 그는 인류역사상 가장 위험한 철학자로 불리기도 한다.
기독교에서 참된 ‘정신’으로 여기는 신의 이념은 관념과 상응한다.



기독교에서는 신만이 세상의 본질과 진리를 안다고 주장하며, 신과 이어진 성직자 권위를 높여왔다. 성직자는 예수 초상을 바라보며 예수 사상과 일치된 삶, 헌신적인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이 삶이 배어나는 얼굴은 설령 겉모습이 닮지 않았다 해도 모두 예수 얼굴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성직자들은 이러한 삶의 태도를 다수 신도에게 강조한다.


그러나 신 앞에서 누가 주인이 될 수 있겠는가. 신 앞에서 초라하지 않을 인간이, 죄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니체가 볼 때 종교적 삶은 노예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니체는 기독교와 대결을 통해 기존 모든 가치에 대한 거부를 선언한다. 이제까지 모든 가치 기준이었던 신의 죽음을 선고하고, 기존 모든 철학도 부정한다.


전통철학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함’의 가치는 이후 칸트 ‘자유의지론’과 연결됐는데, 여기서 선택은 개인이 통제 불가능한 외부(정치, 사회, 문화적인) 원인에 의해 이미 제약된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 결정한다는 것은 그 책임이 오로지 개인에게 있고, 단죄되고 처벌돼야 할 대상 또한 그 행위의 주체인 개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개인을 순식간에 범죄자로 낙인찍어 매도하는 그 사회 가치체계와 규범이라는 것이 과연 절대적이고 완전한 것일까?


니체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초인이 돼 자기 삶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결코 저편의 무엇, 즉 관념적 이데아나 (정)신성을 쫓지 않는다. 지금-여기(대지) 현상적 삶에서, 우리 삶의 조건들을 (계)층화하고 구분하는 경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의미를 건설하라 한다. 그가 말하는 초인은 지칠 줄 모르고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내는 어린아이와 같다. 병원 놀이, 자동차 놀이, 소꿉놀이 등 끝없이 다른 놀이로 옮겨가는 아이들처럼 초인은 어떤 목표나 소유의식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실망도 충족도 없다. 그저 계속해 부수고 만드는 유쾌한 순환을 즐길 뿐이다. 그 놀이과정에서 노예가 주인이 되고, 주인이 노예가 되는 위치 전도, 즉 역할 바꾸기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사실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운명이 고통을 동반해 엄습하면 우리는 대개 신음을 토하며 웅크리거나 무기력이라는 낯선 얼굴을 할 수밖에 없다.


니체는 이때 필요한 것이 ‘힘에의 의지’라고 말한다. 힘에의 의지는 마주한 고통을 극복해나가려는 의지이다. 우리 인생은 우리 바람과 상관없이 우리를 엄습하는 운명들로 점철돼 있다. 우리는 어떤 부모를 만나게 될지, 어떤 외모와 지능을 갖게 될지, 어떤 병에 걸리게 될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인생은 이러한 운명과의 싸움이다. 살다 보면 도와 줄 수도 도움 받을 수도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도래하는가.


그러나 니체는 그 운명과 싸움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삶을 강타해 오는 고통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 때 인간은 강해진다는 것이다. 힘에의 의지가 강한 인간은 그러므로 고통을 사랑하는 인간이며 고난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인간이다.


가혹한 운명과 대결하면서 자신을 보다 강한 존재로 고양시킬 수 있을 때, 기존 자기를 파괴하고 새롭게 살려는 의지, 그 힘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흔히들 니체를 ‘망치의 철학자’라 표현하기도 한다. 인간의 주체성, 자유로운 존재로서 변혁 등을 말한 니체 모습이 마치 망치를 들고 낡은 가치들을 파괴하며 나아가는 모습 같다는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러분은 어떠신가? 부딪쳐오는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힘에의 의지라면, 그것이 삶 자체라면, 안전한 삶만을 바라는 자신을 향해 망치를 들 용기(힘)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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