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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수해(水害), 불가항력이었나? 앞으로는?..
오피니언

수해(水害), 불가항력이었나? 앞으로는?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6/10/11 09:06 수정 2016.10.11 09:06
중앙정부가 국가안보를 위해
언제 있을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군대를 양성하듯이
지방정부는 지역민 안녕을 위해
재난에 대비하는 것이 책무다

“너거 집은 물 안 담았나?”















 
↑↑ 신인균
(사)자주국방 네트워크 대표
정치학박사
ⓒ 양산시민신문 
비가 많이 오면 어릴 때부터 항상 듣던 말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강서동 중에서도 교동이다. 교동은 양산천보다 낮아서 상습 침수지역이다. 그래서 교동 출신들은 비만 오면 서로에게 안부를 그렇게 물었다.



연례행사처럼 침수피해를 입던 교동은 98년 펌프장이 생긴 후부터 침수피해가 없는 듯하다가 2002년 태풍 ‘루사’ 때 인재(人災)가 겹친 여러 요인으로 펌프장 가동이 안 돼 마을 1층 대부분이 물에 잠기는 참사가 발생했다. 그 후로는 ‘물 담는’ 일이 없었다. 어릴 적 기억의 편린들 중 선명한 것 하나가 고사리손에 바가지를 들고 부엌에 고인 물을 마당으로 퍼내는 장면일 정도로 양산천변 저지대 마을 교동 출신에게 수해는 익숙한 재난이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공포스러웠다. 태풍 루사 때도 300mm가량 비가 왔지만, 이틀에 걸친 강수량이었다. 태풍 ‘차바’는 불과 4시간 만에 300mm의 물 폭탄을 퍼부었다. 순식간에 불어난 물은 양산천 중류인 상북면 둑을 넘어버렸다.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파된 상북면 상황 때문에 공포는 더 크게 증폭됐다. 역설적으로 그 공포 때문에 대피를 잘해서인지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다.



교동에 사시는 부모님께 안부를 물었더니 향교와 주민센터가 있는 마을 중앙은 다 잠겼는데, 집안으로는 물이 들어오지 않았단다. 집을 지을 때 물에 잠길 것을 대비해 1층을 최대한으로 높이 지은 덕분이다. 수위가 절정기일 때 양산천은 불과 1m 정도 남기고 물이 찼었다고 한다. 삽량문화축전을 치렀던 그 엄청나게 넓은 둔치와 높은 둑이 불과 1m만 남기고 다 잠긴 것이다.



지류인 신기천과 다방천은 50cm 정도 여유뿐이었다고 한다. 상북이 범람하지 않았다면 양산 시내가 홍수로 초토화됐을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회야강 발원지가 있는 웅상지역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져 양산 전역이 광범위하고 심각한 홍수피해를 입었다.


그럼 이번 수해는 불가항력이었나? 아니다. 양산천이나 회야강을 오래도록 지켜본 사람들은 단박에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토지공사에서 건설한 양산 시내지역 교량은 높이가 높다. 하지만 상북면지역 교량들은 하나같이 높이가 낮다. 교량 높이가 낮으니 난간에 나무 등 퇴적물이 걸리고 이로 인해 물이 바로 내려가지 못해 다리보다 낮은 인접 도로로 방향을 꺾게 된다. 또 수십년째 하천준설을 하지 않아 수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 적어져 버린 요인이 크다.



어릴 적 영대교 위에서 바라본 양산천은 아주 깊었다. 유산공단 화승R&A 앞에 있는 삼각주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래도록 퇴적물이 쌓여 곳곳에 삼각주와 섬이 생길 정도로 양산천이 수용할 수 있는 물의 절대량이 줄어 버렸다. 공단이 처음 생기기 시작한 70년대 중반에는 오폐수처리 개념이 약해 그때 쌓인 밑바닥 퇴적물은 질도 나쁠 것이다. 홍수 방지와 근본적 수질개선 등 다방면 이익을 위해 하천준설이 시급하다.


다음은 더딘 복구다.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찾아와도 할 일이 마땅치 않아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하주차장에 쌓인 뻘을 퍼내려면 기계가 하면 금방 할 텐데, 어떤 기계가 필요한지 몰라 사람이 줄을 서서 퍼내다가 자원봉사자 아이디어로 해당 기계를 부르게 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떤 기계는 양산이 아니라 김해에서 오고 있어서 답답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양산처럼 수해를 자주 입던 곳의 행정당국이 홍수발생 대처 매뉴얼과 각종 상황에 따른 기계기구의 사전협조계약 등이 없다는 것도 넌센스다. 지형과 지역에 따라서 다양하게 벌어지는 모든 재난에 대한 맞춤형 매뉴얼을 다 만들 수는 없겠지만, 우왕좌왕하지 않을 만큼 계획은 필요하다.


중앙정부가 국가안보를 위해 언제 있을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군대를 양성하듯이, 지방정부는 지역민 안녕을 위해 재난에 대비하는 것이 책무다. 경남에서 가장 잘나가는 도시인 양산이 수십년 동안 홍수 걱정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지역인들은 상상하지 못할 일이다. 양산천 퇴적 삼각주에서 “수달 봤나?”라는 삶의 질도 좋지만, 비 올 때마다 “집에 물 안 담았나?”라고 묻지 않는 ‘삶의 기본’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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