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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엄마 우리 집 무서워. 우리도 아파트로 이사 가면 안 돼..
사회

“엄마 우리 집 무서워. 우리도 아파트로 이사 가면 안 돼?”

엄아현 기자 coffeehof@ysnews.co.kr 입력 2016/10/18 09:17 수정 2016.10.18 09:17
빗물 들이쳐 순식간에 집안 삼켜 두 딸 데리고 천신만고 끝 대피
저지대 소남마을 8가구 침수 박 씨 부부도 전 재산 잃어
두 딸, 충격에 밤마다 울음바다 남편 사고에 아내 병까지 생계 막막

제18호 태풍 ‘차바’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상북지역이다. 때문에 비교적 다른 지역 피해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양산 곳곳에는 유일한 보금자리인 집이 물에 잠기고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일터를 잃어버린 이웃들이 많이 있다. 이 가운데 소주동 소남마을에 사는 두 딸을 키우고 있는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한다.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마당으로 빗물이 들이친 뒤 온 집안을 삼켜 버린 시간이 고작 5분도 안 됐다. 부부에게 그리고 두 딸에게 이날은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으로 남아있다.


5일 오전 9시께, 비가 참말 억수같이 내렸다. 남편 박아무개 씨는 태풍 때문에 일거리가 없는 데다 어린이집도 휴원한다기에 두 딸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인지라 집에 있는 시간이 편치만은 않았다.


















↑↑ ①태풍 차바가 퍼부은 물 폭탄에 가전, 가구뿐 아니라 두 딸의 옷가지와 신발, 어린이집 가방까지 모두 잠겨 버렸다.
ⓒ 양산시민신문
무거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대문을 열었다. 그때였다. ‘와락! 콸콸콸~’ 대문 밖 빗물이 마당으로 들이치기 시작했다.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온 마을 빗물이 집으로 다 쏟아져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마당을 넘어 집안까지 빗물이 마구 밀고 들어왔다. 빗물은 순식간에 박 씨 허리까지 차올랐다. ‘안돼! 우리 딸들…’


일단 집을 빠져나가야 했다. 5살 막내딸부터 안았다. 물살을 가로질러 인근 세탁소로 대피시켰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빗물이 이미 가슴팍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아내 심아무개 씨가 첫째 딸을 안고 대문으로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키가 작은 아내에게 안겨 나오다 보니 딸 얼굴이 물에 반쯤 잠겨 있었다. 아내에게서 딸을 받아 번쩍 들어 올렸다. 딸이 그제야 캑캑 물을 뱉어냈다. 그렇게 온 가족이 천신만고 끝에 인근 세탁소로 피신했다. 아내와 두 딸은 너무 놀라 하늘만 멍하니 쳐다봤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쏟아지는 비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박 씨 부부가 정신을 차려보니 온 마을이 물에 잠겨 있었다. 천성산 빗물이 저지대인 소남마을로 쏟아져 내려왔지만 하나밖에 없는 우수관은 제 역할을 못 했다. 아니 오히려 회야천 물까지 가지고 와 더 많은 물을 마을로 쏟아부었다. 그렇게 태풍 ‘차바’는 소남마을을 그대로 삼켜 버렸다. 자그마치 8가구가 침수된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거짓말같이 비가 그친 뒤,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집을 살펴봤다. 안방 창문까지 물이 차 있었고, 가구와 가전제품은 모두 물속에 잠긴 상태였다. 부엌에 있어야 할 냉장고가 대문 밖으로 쓸려 나와 있었다. 거짓말 같았다.


주민은 물론 공무원과 자원봉사자들까지 합세해 복구작업을 한 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시 집안에 들어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혹시나 가구 하나라도 가전제품 하나라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지만 단 하나 건질 게 없었다. 냉장고, TV, 컴퓨터, 밥솥, 옷장, 이불, 딸들이 좋아하는 인형조차도…. 그렇게 모든 것을 잃었다.
















↑↑ ②안방 창문까지 물이 차 도배, 장판을 모두 뜯어낸 채 차디찬 바닥에서 생활하고 있다.
ⓒ 양산시민신문


박 씨는 “우리 딸들이 다치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지만, 만약 제가 없었다면 이날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소남마을이 낮은 지대에 있어서 비만 오면 마당이 물에 잠기곤 했는데, 이렇게 온 집안을 삼켜버릴지는 몰랐습니다. 분통이 터집니다. 우수관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대책 좀 세워달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말 막막합니다”


사실 얼마 전 박 씨는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다 사고를 당했다. 머리에 외상을 크게 입어 계속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기에 다니던 직장을 잃었다. 설상가상 아내도 아프다. 부갑상선기능저하증으로 평생 치료를 해야 한다. 세입자 처지에 가진 것이라고는 물에 빠진 가전, 가구가 전부였다.


심 씨는 “아이들이 집이 무섭대요. 얼마 전 지진 때문에 충격이 컸었는데, 이번 물난리로 아이들이 상처를 크게 받은 것 같아요. 다른 친구들처럼 아파트로 이사 가면 안 되냐고 말하는데 가슴이 무너질 것 같아요. 마을회관에서 겨우 잠이 들었는데 무슨 꿈을 꾸는지 자꾸 울면서 깨요.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하늘이 원망스럽고 나 자신이 한심해 미쳐 버릴 것 같아요”

















↑↑ ③물이 빠진 뒤 집 안의 물품들이 대문 앞까지 쓸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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