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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 행복한 세상] ‘사랑하다’와 ‘이해하다’는 같은..
오피니언

[청소년이 행복한 세상] ‘사랑하다’와 ‘이해하다’는 같은 것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6/10/18 09:18 수정 2016.10.18 09:18













 
↑↑ 이정희
양산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통합지원팀 팀장
ⓒ 양산시민신문 
지진과 수해를 겪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겪은 것과 전해 들은 것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지진이 있었을 때 처음엔 모르고 지나갔는데 직접 경험했을 때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고 정말 무서웠다.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얼마나 잘 전달해야 나만큼 느끼겠는가. 또한 몇 번 경험만으로도 지진이 정말 무섭다 싶은데 언제 멈추는 것인지 멈추기는 할 것인지를 모른다면 그 공포와 불안감이 어떨지는 짐작만 될 뿐 그들만큼 느낀다는 건 힘들 것 같다.


모라(가명)는 아빠와 엄마가 큰 소리로 싸우는 모습을 어릴 때부터 자주 봤다. 서로 몸싸움이 벌어지기라도 하면 방으로 숨어야 했다. 무서워서 울기도 하고, 아빠 엄마에게 매달려도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다 밥도 못 먹고 잠들기도 했다. 다시 잘 지내기도 하지만 싸우는 날은 시도때도 없이 찾아왔다.



언제부턴가 집에 있으면 그냥 불안하고 싸우는 소리가 나면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크게 틀거나 게임을 미친 듯이 했다. 그러면서 내가 원하는 것이나 필요한 것은 누구에게 언제 말해야 할지 눈치를 보다 포기하기 일쑤다. 그리고 아빠 엄마가 뭐라고는 하는데 들리지 않고 지나고 나면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 매일 혼이 나는데 그럴 때마다 억울하고 화도 난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자주 다투게 된다. 누가 조금만 툭 건드려도 짜증이 나고, 짜증이 나면 욕을 하거나 주먹이 나가서 선생님에게도 혼이 난다. 가끔은 내가 잘못했다 싶을 때도 있지만 친구가 잘못했을 때도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정말 답답하다. 집에도 들어가기 싫고 공부는 더 싫고 친구들도 밉다. 모라는 문제아일까요….


싸우는 부모 모습을 봐야 하는 아이는 지진을 겪으며 불안 속에서 사는 것과 똑같다. 부모가 자주 다투고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반복되는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면 누구라도 모라처럼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대부분 아이의 잘못된 행동만을 탓하게 된다. 그리고 모라가 행동을 바꾸고 감정을 조절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니다!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 부모가 먼저 자신들의 불안정한 부부생활로 인해 아이가 어려움을 갖게 됐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정말 미안하다! 아빠 엄마도 부모역할이 처음이라 잘 몰랐다. 그냥 우리 둘이 싸우는 거고 또 화해하며 사는 것이라 생각했지 너에게 상처가 되고 너의 그런 행동들을 우리가 만들고 있는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거기다 너 때문에 속상하고 창피하다고 말했다. 아빠 엄마가 너에게 잘못한 것이 더 많았는데….’



그리고 아이가 부모에게 얼마나 무서웠는지 또 무엇이 억울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여러번 반복해서 충분히 줘야 한다. 꼭 그렇게 해야 한다. 마치 오래 묵은 때를 닦고 또 닦아야 하는 것처럼.


대부분 부모는 아이가 그만할 때까지 이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서로 알았고 노력하고 있으니 몇 번 하면 그만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는데 그렇지 않다. 부모 역할은 평생 AS(아프다 서비스)인 것 같다. 모르고 했든 알고 했든 그 차이도 별로 없다.


물론 부모도 억울하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부모로부터 충분히 사랑받거나 지지받지 못해서 생긴 아픔이 있었는데 깨닫지도 못하고, 치유는 생각도 못 해봤다. 그런데 내 아이에게 같은 일이 일어나고서야 내 상처를 돌아보게 되는데 나는 누가 치유해주는가 싶어서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부부가 서로 자신들 어린 시절 상처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평화롭고 따뜻한 가정을 만들면 아이도 금방 치유가 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부모 사랑만큼 강력한 치료약은 없는 것 같다.


포리스터 카터는 말한다. “사랑과 이해는 같은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할 수 없고, 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더더욱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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