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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민은 힘이 세다
오피니언

시민은 힘이 세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6/11/01 09:05 수정 2016.11.01 09:05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시절에
민주주의 최후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 이지양
양산YMCA 사무총장
ⓒ 양산시민신문 
여자들에게 이모는 참 특별한 존재다. 꼭 친족관계 이모가 아니어도, 우리는 여자친구들의, 선후배들의 아이들에게 선뜻 이모라는 호칭을 내준다. 그리고 금세 내 배가 아파 낳은 것처럼 아이 시간과 삶과 고민을 함께 공유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공동의 보살핌과 돌봄의 경험 속에서 만들어진 자매애는 참 매력적이다. 요샛말로 케미가 맞는 여여커플이라고 할까?


그런데 요즘 한국사회를 달구고 있는 최악의 여여커플을 목도한다. 둘은 정말 케미가 맞아서 첨삭의 글쓰기 관계를 유지하고, 소울메이트로 보호와 권력을 상호교환했을지 모르겠지만 이 둘을 쳐다보는 국민은 정말 부끄럽다. 왜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이런 식으로 아이 손을 잡고,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배우게 하기에는 그동안 민주주의 진보를 위해 걸어왔던 역사의 발자국들이 너무 분하다.


무엇이 나를 가장 부끄럽게 만들고 분노하게 하는가? 같은 생물학적 성(sex)인 여자라는 사실이? 그녀가 우리나라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불통과 유체이탈 화법의 아이콘을 그저 이번 정권 특색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나의 단순함이? 선거부정을 통해 당선되고 끊임없이 무능의 끝을 보여주었지만 남은 임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나의 순진함이?


양산YMCA에서 어린이, 청소년들과 만날 때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단어는 ‘민주시민’이다. 양산에서 어린이 시민으로, 청소년 시민으로 민주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함께 모여 토론하고, 주장하고 참여하는 민주시민으로 사는 법을 이야기해왔다.



그런데 이 아이들에게 지금 민주주의 민낯을 드러내 보이고, 이야기하는 것이 참 부끄럽다. 역사국정교과서 문제도, 세월호 진실도, 소녀상을 철거하겠다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타결도, 사드 배치도, 핵발전소 문제도 시민 의견을 묻지 않고 결국 거리에서 촛불을 들 수밖에 없게 만드는 배후에 어처구니없는 결탁이 있었다는 진실이 정말 부끄럽다. 향후 발생할 정국혼란이 남북관계 위기를 가져오고, 권력 공백이 국가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악의적 여론몰이에도 끄떡없도록 제대로 단련시키고, 시민을 자성하게 만든 것이 유일한 정권 업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민은 힘이 세다. 봉하마을 추모관 입구부터 만나게 되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는 말이 참 절실하게 와 닿는다. 1871년 파리코뮌에서 프랑스 시민은 “제빵공 야간작업 폐지, 노동자들에 대해 온갖 구실을 달아 벌금을 부과하는 고용주에 대한 과태료 부과, 폐쇄된 작업장과 공장을 노동자 협동조합에 양도하는 조치와 함께 무상교육, 여성참정권” 등 지금에도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정책들을 만들어 냈다.



안타깝게도 피의 일주일 동안 정부군의 무차별한 학살로 2만명이 넘는 시민이 죽어 파리 다리 밑은 강물 대신 시신이 흘렀다고 한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아래에서 광주는 자치와 연대 공동체를 이룬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시민 합의를 바탕으로 독일에서 원전 문을 닫게 만든 사례를 공유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독일 탈핵전문가 리차드 머그너는 강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수많은 시민이 참여한 침묵시위부터 엄청난 길이의 인간 띠잇기까지 다양한 데모(demonstration), 크고 작은 자리에서 어디서든 탈핵을 이야기했던 수많은 말들(speaking), 그리고 정당과 정치를 향한, 국내를 넘어 외국까지 넓혀온 연대의 로비활동(lobby). 이 세 가지를 포기하지 않고 치열하게 한 결과가 원전을 문 닫게 만들었다고….


거국중립내각이든, 대통령 인적 쇄신이든 정치권에서 또 전문가들이 내놓고 있는 미봉책에 시민은 관심이 없다. 식당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시장에서, 공장에서 시민들이 이야기하고 있는(speaking) 것이 중요하다. 시간과 돈을 들여서, 손해를 좀 보더라도 아파트 베란다에 탈핵 반대 현수막을 붙이고, 이마트 앞 백남기 어르신 촛불집회에 나가고, 향후 대한민국 방향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시민의 조직된 힘과 저항(demonstration)이 더 중요하다.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시절에 민주주의 최후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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