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희망웅상 행복한 세상] 울 어무이..
오피니언

[희망웅상 행복한 세상] 울 어무이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6/11/01 09:18 수정 2016.11.01 09:18

이쯤 해서 어무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 이수임
희망웅상 홍보분과
ⓒ 양산시민신문 

어무이가 돌아가셨다. 올 추석날 점심 드시다 황망히 가셨다. 사레에 걸리시고 몇 차례 숨을 헐떡이시더니 그길로 가셨다. 그렇게 가셨다.


어무이는 17년 전 우리 집에 오셨다. 처음 뵈었을 때 당신을 ‘엄마다’라고 하시며 딸같이 살뜰히 챙겨주셨던 게 기억이 난다. 시골 가난한 살림에 귀한 손님 오면 대접했을 법한 마른오징어국을 내어놓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시어머니 모시기 힘들다 해도 울 어무이는 안 그럴 것 같았다.


한동안 어린 손주들 보시느라 여념이 없었다. 육아로 사회에서 도태될까 봐 나는 어린 애들 사탕 하나씩 물리고 몰래 방문 닫고 까치발로 일하러 갔다. 남은 몫은 우리 집 오실 때부터 거동이 불편한 어무이 몫이었다.


다행히 손주 보는 재미에 많이 건강해 지셨고, 100평 가까운 밭작물을 하실 정도로 많이 좋아지셨다. 새벽같이 일어나 동네 한 바퀴 꼭 돌고 오시고, 자식에게 절대 폐 끼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이래저래 눈치껏 일 도와주시던 어무이.


그러던 어무이가 다짜고짜 돈이 없어졌다고, 내 옷 다 어떻게 했냐고 나를 책망하고 흘겨보시고 욕을 하기 시작했다. 2010년도에 한 달 가까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중환자실에 계시다 나온 뒤부터였다. 올 것이 왔구나! 평소 텔레비전 보시다 치매 할머니들 나오면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하시던 어무이가 치매에 걸리셨다. 그때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보다는 딸같이 여기시던 분이 결국 나를 그냥 남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더없이 서럽고 원망스러웠다.


어무이랑 단둘이 있을 때는 눈을 마주치기 싫었다. 아니 언제 또 폭언이 날아올지 몰라 무서웠다. 단지 병일 뿐이라고 아무리 그 원망스런 마음을 지우려 해도, 또 나는 어무이를 친정엄마처럼 생각했나 입장 바꿔 봐도 그 서운함은 메워지지 않았다.


어무이를 원망하는 내 속 좁은 모습도 보기 싫었다. 남편한테는 내색도 못 했다. 어무이를 끔찍이 여기던, 나한테 미안해서 더 마음 써주던 남편을 더 힘들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어무이한테 큰 소리 한 번 안 내고 내 할 도리를 했다. 아침엔 꼭 물렁한 나물 반찬 한 가지는 해 드리고 사흘마다 목욕시키고 저녁에 간식거리 마련하느라 모임에서 주는 떡은 안 먹고 가져와서 어무이 드렸다. 어무이 성에는 안찼겠지만 나는 나름 최선을 다했다.


이제 홀가분하다. “그 어려운 걸 해냈지 말입니다”라는 유행어처럼 나는 해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내가 기특하다. 돌이켜보면 어무이 때문에 인간 공부도 많이 한 것 같고 마음 밭도 조금은 넓어진 것 같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셔서 평안히 지내시길….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