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생각은 부모 자신 생각이 아니라, 외부 기준, 즉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형성된 생각(관념, 觀念)일 공산이 크다.
그의 논의에 따르면 우리가 학습해 알고 있는 진리, 혹은 지식에는 권력 이데올로기가 깃들어 있으며, 그 이데올로기가 우리를 점점 노예화시킨다. 가령, 아이는 태어날 당시에는 아는 것이 없다. 엄마가 어떤 사물을 가리키며 그 이름을 명명할 때, 아이는 엄마가 일러준 대로 사물을 받아들인다. 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처음 학교에 간 아이들은 학교 규칙을 모르고, 지식에 대한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학습을 통해 등ㆍ하교시간을 지키고, 교복을 입고 수업시간에 바른 자세로 앉아 있게 된다.
지식정보 또한 학습을 통해 받아들인다. 현장체험을 가려할 때, 선생님이 아이들 의사를 묻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 선생님들이 장소를 정하고 학생들에게는 통보한다. 아이들은 그것을 규칙으로 받아들인다. 이때 학교는 아이들을 지배하는 권력이 되며, 아이들은 그 권력에 지배당하는 피지배자가 된다.
푸코 식으로 말하면, 우리는 모두 원형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와 같다. 사회 기준, 규율에 따라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라 생각하며, 그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보편적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심각하다. 이 시대 기준은 ‘자본’이다. 자본 규칙은 우리가 지켜야할 기본규칙이고 삶의 기준으로 인식되기에, 우리는 자본을 위해 평생을 죄수처럼 살아간다.
자본주의는 인간 본성과 상관없다. 교육이고 학습이고 훈육된 것이다. 자본에 훈육된 학생들에게 선택 여지는 없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물질 성공이 곧 행복으로 이어지는지는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녀 교육에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나 자신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 속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자녀에게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자신만의 기준을 가질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자녀 교육이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