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왜 추운데 굳이 교복을 입고 광장에 나왔느냐고, 태극기를 들고 애국가를 부르는 건 무슨 이유였냐는 질문에 “교복을 입지 않으면 어떤 기자들도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또 “청와대 앞으로 뛰어가던 아이들이 엄청난 숫자의 전경들과 마주 대하고 있을 때 아이들은 흥분했고, 여기저기 아이들이 소리 높여 비켜달라고 분노하고 있을 때 한 아이가 갑자기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고, 일순간 아이들이 모두 애국가를 따라 부르면서 울음바다가 됐다”고 했다. 몇 백명 아이들이 애국가와 함께 울기 시작하고, 앞에 서있던 경찰들도 따라 울고, 심지어 취재하던 기자들까지 울었다던 그 광경이 눈에 그려졌다.
무엇이 우리 청소년들을 이렇게 청와대 앞마당까지 뛰어가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청소년들로 하여금 지난 17일 5차 시국대회까지 양산 이마트 앞에서 마이크를 잡게 만들었을까? 분노의 촉발은 끊임없이 극단적인 경쟁으로 밀어 넣는 헬조선 현실 속에서 정유라가 촉발시켰을 것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세월호 비극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친구세대에 대한 미안함이 증폭시켰을 것이다.
그러면 이 청소년들에 대해 어른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아마 이 두 부류가 가장 많을 것이다. “참 미안하다. 너희들이 집회에 안 나와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 주지 못해 어른으로 참 미안하다”라고 이야기 하거나 “요새 아이들은 참 똑똑하고 말도 잘하는데, 이게 정말 너희 생각이 맞는 거니? 누가 대신 써 주거나 알려준 것이니?”라고 하는 어른 시선이 가장 많을 것이다. 나는 이 두 부류 모두 청소년에게는 꼰대 어른으로 비춰질 것이라 확신한다. 스스로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꼰대 어른이 아니라,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신희경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들의 무기력은 광장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한 번도 이들은 이 사회 일원이라는 것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근데 광장에서 그 경험을 한다. 그러면 어른들은, 예를 들어 선생님들은 광장으로 아이들을 데려오고, 수업시간에 이 경험에 관해 토론하고 이렇게 사회적으로 공인이 되는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해 주면 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진주에서는 중고생혁명연대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눌렀다는 이유만으로 징계를 받았다고 한다.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받는 것이 지금 학교 현실이다. 청소년들의 건강한 분노를 어른들의 조작이라 의심하기 보다는 촛불로 민주주의를 배우고 있는 청소년들을 학교의 담으로 가두어 닥치고 공부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조작을 의심하고 허물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당당히 광장에서 이야기하고, 이것을 사회는 당연히 받아들이고, 꼰대가 아닌 어른들은 이를 공인해 줄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며, 청소년 당사자 운동에 괜히 숟가락 얹을 생각을 하지 않는 사회를 꿈꾸며 청소년들의 촛불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