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달력 한 장 짐짓 무엇으로 살아왔냐고 되물어 보지만 돌아보는 시간엔 숙맥 같은 그림자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고
비워야 채워진다는 진실을 알고도 못함인지 모르고 못함인지 끝끝내 비워내지 못한 아둔함으로 채우려는 욕심만 열 보따리 움켜쥡니다
내 안에 웅크린 욕망의 응어리는 계란 노른자위처럼 선명하고 뭉개도 뭉그러지지 않을 묵은 상념의 찌꺼기 아롱지는 12월의 공허
작년 같은 올 한 해가 죽음보다 진한 공허로 벗겨진 이마 위를 지나갑니다
l 시 감상
인생에 대해 또 한 번 진하게 느껴보는 달 12월. 해마다 반복되는 마음으로 뒤돌아보는 달이고 여기저기서 한해를 마무리하는 심정으로 마음도 몸도 바빠진다. 심은 대로 거둔다고 처음 마음 다잡은 것들 그대로 행동에 옮겼더라면 자신들이 원하는 것들로 마음을 채울 수 있었을까 많은 생각으로 초라해지기도 하고 안타까움이 남겠지만 그래도 남은 시간이 주는 가슴 뛰는 순간순간들이 있기에 행복해 하자. 기도하는 삶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한 달을 보내고 일 년을 보내게 된 끝자락에서 언제나 남는 건 공허지만 그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