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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네팔ㆍ히말라야 배낭여행]아무도 당신을 대신해서 걸어줄 ..
기획/특집

[네팔ㆍ히말라야 배낭여행]아무도 당신을 대신해서 걸어줄 수 없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7/01/24 09:26 수정 2017.01.24 09:26
21그램의 영혼이 맑아지는 진정한 순례여행⑥ 쿰부히말 세번째 이야기

이튿날 짐을 챙겨 탱보체(Tengboche)로 향했다. 탱보체 가는 길은 남체 둘레길을 돌아서 푼키텐가(Phunki Tenga)까지 내려갔다 고소와 싸우며 올라야 하는 길이다. 가는 길이 쉽지 않은 코스다. 지나는 길에 야크 떼를 자주 만났다. 높낮이가 들쑥날쑥한 캉주마(3천550m), 푼키텐가(3천250m), 탱보체(3천860m), 디보체(3천710m)를 지나며 잇달아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 걸어야 했다.















ⓒ 양산시민신문



그래도 대기를 뚫고 솟아오른 히말라야의 맑고 반짝이는 빛은 연기와 소음이 전혀 없어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성스럽고 웅장한 설산들은 하늘높이 치솟아 가던 걸음을 멈추게 했다.


특히 푼키텐가에서 탱보체로 올라가는 길은 거리가 2.5km 정도인데 반해 고도는 610m나 차이가 나 헉헉대는 트레커들이 많았다.


‘고행의 길이요, 깨달음의 길이다’


남체를 오르는 일도 만만치 않은데 두 번째로 고전하는 곳이 탱보체 오르는 길이다. 특히 경사도가 심한 곳에서 야크를 만나면 비상상황이 벌어진다. 재빨리 몸을 계곡 쪽이 아닌 산 쪽으로 피해야 안전하다. 순간에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계속 오르막길을 돌고 돌아서 신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21그램의 영혼도 함께 올랐다. 야크 떼를 만나면 으레 흙먼지까지 뒤집어 써야 했다.


힘들게 오른 텡보체에는 이미 많은 트레커들이 도착해 있어 숙소가 부족했다. 내가 잘아는 히말라야 게스트하우스도 “룸풀(Room full)”이라고 하면서 방이 없다고 했다. 롯지 몇 군데를 둘러보니 역시 방이 없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조금 더 걸어 디보체(3천720m)까지 가니 롯지에 방이 있다고 했다. 숙소 앞으로 아마다블람(6천856m)이 위용을 자랑했다. 롯지 이름도 아마다블람이었다. 에베레스트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힘들었던 하루였던 만큼 일행들은 곧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다행히 편하게 잠을 잘 잔다는 것은 고소에 적응됐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체크아웃을 하다가 얼굴이 붉어졌다. 숙박료가 메뉴에도 없는 가격까지 포함돼 터무니없이 비쌌던 것이다. 이유는 밥을 사먹지 않고 요리를 해서 먹었다는 것이었다.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흥정은 필수인데 사전에 물어보지 않았던 게 실수였다. 황당한 견적이 나오고만 셈이다.


디보체부터는 계속 오르막이 이어졌다. 다음 숙박지가 딩보체(4천410m)라 하루 동안 걸어야 할 거리가 10㎞에 달했다. 중간에 팡보체(3천930m)에 잠시 들렀다. 팡보체는 오림과 테림으로 마을이 나뉜다. 오림은 우리말로 아랫마을이고, 테림은 윗마을에 해당한다. 테림이 있는 팡보체 곰파를 둘러보고 언덕에 올라서니 케른(Cairn)이 나타났다. 케른은 이정표로 삼거나 특정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쌓아 놓은 돌무더기나 석총을 가리킨다. 그중에는 히말라야에서 산화한 한국원정대를 기리는 추모 케른도 보였다. 잠시 묵념하고 임자체 콜라를 따라 돌계단을 타고 올랐다가 다시 완만한 길을 만났다.


소마레(4천10m)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공기가 생각보다 차가웠다. 고도가 이미 4천m를 웃도는 곳에서 바람마저 차가워지니 체감온도(windchill)도 뚝 떨어졌다. 이제부터 체온 유지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소마레에서 딩보체 가는 길은 넓었다. 트레커와 야크들이 이곳을 지나며 길을 넓힌 것이다. 통행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현지인들은 신나게 걸어 다니는데 우린 왠지 자꾸만 걸음이 무겁고 둔해졌다.


딩보체 뒷산은 세계 4위 고봉 로체(8천516m)남벽이 버티가 있고, 앞산은 세계 산악인들의 연인이라 부르는 아름다운 미봉 아마다불람이 뒷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고도 4천410m의 딩보체(Dingboche)에 도착했다. 고도가 고도인 만큼 일행들이 환자처럼 힘들어한다. 썬라이즈게스트하우스(Sunrise GestHouse)에 숙소를 정했다. 옷을 따뜻하게 갈아입고 딩보체 주변을 가볍게 걸었다. 어둡기 전에 숙소로 돌아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딩보체는 아일랜드피크나 로체 남벽으로 가는 길목이다.

















↑↑ 에베레스트 트래킹 루트
ⓒ 양산시민신문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가벼운 트레킹에 나섰다. 고소순응을 위해 추쿵 쪽으로 올라갔다. 히말라야 대기의 청정함 속에서 설산은 더 가까이 다가오고 눈부심 속에 조용히 내 얼굴은 그을려 지고 있었다. 딩보체에서 고소순응 훈련은 통상 딩보체∼두클라∼페리체로 돌아오는 코스를 선택하는데, 우리는 딩보체(4천410m)∼추쿵(4천730m)∼추쿵리(5천550m)를 다녀오는 코스를 밟았다. 딩보체에서 바라본 로체(8천516m)는 장쾌했다. 지난 2002년 로체 서벽을 등정한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로체와 함께 본 임자체(6천189m) 설산도 정말 아름다웠다. 임자체는 과거 ‘아일랜드피크’로 불렸다. 얼음바다에 갇힌 섬이라는 뜻인데, 실제 구름 속에 잠긴 산 모습이 그렇게 보였다. 이를 네팔 정부가 1984년 고유 명칭인 임자체로 바꿨다. 요즈음은 임자체와 아일랜드피크를 혼용해 쓰고 있다.


딩보체에서 휴식같은 이틀을 보내고 로부체(4천910m)로 향했다. 푸룽카르카 언덕을 지나 두클라(4천620m)에 닿았다. 푸룽카르카에서 ‘카르카’는 야크 방목장을 뜻한다. 여기서 쿰부 빙하 끝자락을 힘겹게 오르면 산중턱에서 초르텐과 룽다르 깃발을 무수히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에베레스트와 로체 등반 때 목숨을 잃은 등반대원과 셰르파의 묘역이다. 히말라야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두클라(4천620m)에서 로부체(4천910m)까지 올라오니 일행들이 많이 지쳤다. 고소 때문에 잠을 설친 사람도 있었다. 로부제 에코롯지(Eco Lodge)에 숙소를 정했다. 에코롯지는 아시안트레킹이 직접 운영하는 제법 현대화된 롯지다. 방이 없을 정도로 트레커들로 붐볐다. 깜짝 놀랐다. 야크를 닮은 내 모습을 보고 “한국사람입니까?” 묻는데 알고보니 우리지역 사람이였다. 묘한 인연이었다.


이튿날 아침은 토스트와 따끈한 차로 아침을 때운 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천400m, EBC)로 출발했다. 캠프로 가는 길은 그리 험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소 때문에 발걸음이 무겁다고 느끼는 트레커들이 많았다. 그런 까닭에 이 구간은 많은 트레커들이 히말라야를 감상하기보다 ‘몸으로 체험하는’ 코스라고 말하기도 한다. 몸은 거부하지만 마음은 벌써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 가 있다.


로부체에서 고소에 시달려 잠을 설친 일행들은 다행히 아침에 따끈한 차 한 잔을 하고나더니 회복됐다. 모두 갈길 먼 나그네처럼 서두른다. 얼른 다녀올 수 있는 코스가 아닌데 마음이 좀 급해 보인다. 나는 오늘 스테이지가 되는 칼라파타르까지는 무난히 갔다 올 수 있으니 천천히 걷자고 주문했다. 히말라야는 누구 편도 들어주지 않는다. 모든 것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그래야만 히말라야를 걸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일행들이 슬슬 히말스러워져 갔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바로 아래 고락셉 근처에 이르니 푸모리(7천165m)가 보였다. 쿰부히말라야에서 눈사태가 가장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봉우리다. 주변 산을 열심히 설명했지만 일행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만큼 힘들다는 반증이다.


우여곡절 끝에 칼라파타르는 제쳐놓고 베이스 캠프로 올라갔다. 고락셉에서 3시간, 로부제에서는 8시간이 걸린 고난의 행군이었다. 에베레스트 정상이 목표라면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고행이 시작된다. 필자도 지난 2007년 3수 만에 세계 최고봉에 오른 이력이 있다. 앞서 2006년에는 정상을 겨우 88m 남겨두고 발길을 돌린 적도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신(神)이 나를 외면했던 것처럼 야속하게 느껴진다.

















↑↑ 발자국만 알려져 있을 뿐 그 정체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은 수수께끼 동물로 일반적으로 ‘눈사나이’로 불리는 예티(yeti)는 1899년 처음으로 히말라야 산맥 6천m 고지 눈 속에서 그 발자국이 발견됐다. 쿰중곰파에는 예티 머리털로 불리는 정체 모를 털가죽이 보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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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본 에베레스트는 생각보다 훨씬 더 위대했다. 그러나 에베레스트 정상을 제대로 조망하려면 캠프 아래 칼라파타르(5천550m)에서 볼 것을 추천한다. 그래서 일행들에게 칼라파타르를 들리겠느냐고 물으니 대답이 없다. 얼른 고산증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만 간절해 보였다. 곧바로 두클라로 내려와 잠을 청했다. 고도 1천m 이상을 내려와 두클라에서 하룻밤을 자고나니 중환자가 회복실로 들어온 기분이다. 이튿날 피로가 좀 풀린 상태에서 굼중으로 내려갔다. 길은 페리체와 팡보체를 거쳐 탱보체까지 별 무리없이 이어진다.



굼중은 히말라야 최초 산악학교와 하얀색으로 잘 만들어진 스투파가 나란히 있다. 숙소에서 네팔 전통술인 ‘창’을 들이켰다. 굼중에 도착하니 고향에 찾아온 것처럼 푸근하고 넉넉해 보였다. 창을 마시자 피로가 다 풀렸다고 일행 중 몇 사람이 너스레를 떨었다. 굼중에서 루클라까지는 일반인에게는 제법 먼 길이다. 힐러리학교를 지나 남체바자르를 거쳐 루클라까지 내려오니 롯지마다 트레커들로 북적였다. 사연을 들어보니 비행기가 며칠 동안 운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순간 가슴이 답답했다. 히말라야에서 많은 경험을 했어도 이런 기상상황을 만나면 기다리는 수밖에 뾰족한 대책이 없다. 요즈음은 루클라에서 2일 이상 비행기가 결항되면 마냥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미련 갖지말고 파블루(2천500m)까지 내려간 후 현지 차량(10시간 소요)을 이용해 카트만두로 돌아오는 방법을 택하는 것도 괜찮다.
아! 내일을 알 수 없는 히말라야다.

>>쿰부히말 다음 이야기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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