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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대식 양산시 문화관광해설사 | |
ⓒ 양산시민신문 |
‘닭’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세화(歲畵, 새해를 송축하고 재앙을 막기 위해 그린 그림)나 문배도(門排圖, 문에 그림을 붙여 잡귀를 막기 위해 제작된 그림)에서는 어둠과 잡귀를 쫓아내는 길상과 축귀의 상징으로 그려졌다. 닭의 볏=벼슬=입신출세와 부귀공명이라 해 선비들은 방에 닭 그림을 걸어두고 학문에 정진하기도 했고 병아리와 함께 있는 암탉 그림은 풍요다산과 자손번성을 의미하기도 했다. 또 닭의 피는 벽사의 힘이 있다고 여겨져 돌림병이 돌 때 그 피를 문설주나 벽에 바르기도 했다고 한다.
닭은 12지 중 유일하게 날개를 가진 짐승으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메신저로서 상징성과 문ㆍ무ㆍ용ㆍ인ㆍ신의 5덕을 갖춘 존재로 칭송되기도 했다. 조선 후기 유학자 하달홍은 ‘한시외전’을 인용해 ‘닭은 머리에 관을 썼으니 문(文), 발톱으로 공격하니 무(武), 적을 보면 싸우니 용(勇), 먹을 것을 보면 서로 부르니 인(仁), 어김없이 때를 맞추어 우니 신(信)’이라고 닭의 5덕을 예찬한 바가 있다.
이렇게 상서로운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닭과 관련된 말은 부정적인 말이 더 많은 것 같다. ‘암탉이 울면 집안 망한다’라든지 ‘계륵’, ‘계란유골’, ‘군계일학’, ‘꿩 대신 닭’, ‘꽁지빠진 장닭’, ‘촌닭 서울구경’에다 근자에 널리 회자하고 있는 ‘닭ㅇ가리’ 등이 그러하다.
닭의 해를 맞았지만 닭이 닭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중순 발생한 사상 최악의 고병원성 인플루엔자(AI) 창궐로 무려 3천만마리 닭이 살처분 당하고 달걀값은 금값으로 치솟았다. 국내 최대 산란계 양계농가가 밀집해있는 우리 양산은 신속한 대응으로 AI가 진정세를 보이고 달걀도 제한적으로나마 출하된다고 하니(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닭의 수난은 양계농가와 소비자에 이어 치킨집 사장님 수난으로 이어져서 안 그래도 우선 손쉽다고 창업했다가 5년을 못 버티고 10명 중 7명이 폐업한다는 치킨집 사장님도 더 갈데없는 벼랑으로 내몰렸다. 이 중에는 정유생도 적지 않을 것 같다.
해마다 맞는 새해지만 정유생으로서 정유년을 맞는 올해 감회는 남다르다. 전쟁 후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로 가난을 머리에 이고 나와서 정말이지 치열한 삶을 살아오다 위로 눌리고 아래로 치받히며 변화에 떠밀려 이제 은퇴기에 들었다. 현대사 현장에서 또는 그 뒤안길에서, 전쟁 말고는 겪을 것을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올해 또 한 가지가 남았다.
역사 속 정유년을 살펴보니 1597년 정유재란과 1897년 대한제국 선포 외에는 큰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올해 2017년 정유년에는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다. 60년 후 2077년 정유년에 우리 증손자가 제 할아비처럼 정유년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정유년’을 검색하면 가장 큰 사건으로 뜰지도 모르겠다. 그 변화가 우리 역사에, 우리 같은 소시민에게, 나아가 우리 자손들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되기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좀 늦었지만 정유년을 맞아 매달 재미없는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들과 귀한 지면을 내어주는 양산시민신문에 새해 인사를 드린다. 올해는 살처분과 ‘닭ㅇ가리’라는 말이 없는 세상이면 좋겠고, 닭의 5덕 중에 신(信)만이라도 이뤄지면 좋겠고, 어떤 변화이든 그것이 우리 공동체 삶에 긍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변화였으면 좋겠다.
닭은 동트기 직전, 가장 추울 때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첫울음을 우는 새벽의 전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