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무섭지만
사실 알고 보면
어른들도 겁을 감추고 있는
종이로 된 호랑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
 |
|
|
↑↑ 이지양 양산YMCA 사무총장 |
ⓒ 양산시민신문 |
|
‘10대를 위한 빨간책’1)은 정말 표지가 진한 빨간책이다. 그리고 책 앞면에는 유럽학생들이 어른 몰래 돌려 읽던 책이라고 소개하며 책 뒷면에는 “모든 어른은 종이호랑이다”라는, 알고는 있지만 큰소리로 이야기할 수 없었던 비밀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학생들에게 만약 자신이 처한 운명에 만족하고 모든 것이 잘 돌아간다고 느끼고 절대로 아무것도 바꾸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버리라고 한다. 아니면 제대로 돼가는 게 아무것도 없고 잘못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에게 전해주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버리기 전에 YMCA 청소년 회원들과 같이 읽고 토론하려고 결심했다. 최근 Y청소년들에게 이 책이 필요해진 두 가지 사건이 생겼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사건은 이번 주말에 이마트 앞에서 ‘독도와 관련한 역사바로알기’ 캠페인을 진행한 청소년 역사동아리 경험담이다. 열심히 캠페인을 진행하는 청소년들 앞으로 약주를 좀 드신 것으로 추정되는 어르신 한분이 다가와서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것에 대해 증거를 설명해 보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동아리 소속 친구들은 기분이 나빴지만 예의를 갖추어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한 것을 설명했으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캠페인을 진행한다는 꾸지람을 듣고 난 후 이들 사이를 중재한 지도 간사가 어르신에게 “차후에 더 공부해서 오겠다”는 미봉책으로 훈훈하게(?) 마무리 됐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미 청소년들 가슴에는 ‘소통 없이 호통만 있는 어른들’에 대한 상처가 딱지처럼 앉아 버리지 않았을까?
두 번째 사건은 YMCA 밴드에서 ‘탈핵캠페인을 진행한 청소년동아리’ 활동소개기사가 증폭시킨 댓글 논쟁이다. ‘미래 희망인 청소년들이 정치적인 팻말을 들고 시위하는 표현의 자유를 가르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지’를 공개적으로 묻는 어느 회원분 글에 대해 ‘청소년들이 어디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라오는 집단이냐’고 되묻는 회원에서, ‘고등학생들이 정치얘기 하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 회원까지 어른들 댓글이 달려 오랜만에 밴드가 논쟁의 장이 된 사건이다. 그렇지만 이 댓글 논쟁에서 선뜻 자신들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상처받은 집단은 오히려 탈핵캠페인을 진행한 청소년동아리 청소년들이라는 문제가 생겼다.
한국사회와 한국정치는 교묘하게 세대갈등을 부추
긴다. 원래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 아이와 어른 두 집단이 서로를 무서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더 세밀하게 들어가 보면 아이들이 더 참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앞에 사건에서도 아이들은 ‘어른이기 때문에’ 억울한 호통에도 참고 있었고, 괜히 예의 없는 집단으로 비춰지는 것이 싫어서, 또 자신들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면 더 싸움을 부추길 것 같아서 그냥 억울하게 참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빨간책’을 읽으려고 한다. 호랑이는 무섭지만 사실 알고 보면 어른들도 겁을 감추고 있는 종이로 된 호랑이라는 사실을 함께 토론해봐야겠다. 어른들은 그렇게 힘이 세지 않고, 때로는 많이 비겁한데 이걸 인정하고 그래도 용감하게 나서려고 매일 용기내는 연습을 하는 어른들도 있다고…. 이런 어른들과는 함께 연대하면 훨씬 근사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해줘야겠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책에 나온 대로 해보고 싶은 실천이 하나 있다. “선생님에게 말을 놓고 싶다면 말을 놔라”고 이야기해보는 것이다. 어떤 이는 존댓말이 존재하는 한국 문화에서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냐고 하겠지만 대안학교나 새로운 교육공동체 속에서는 벌써 오래전부터 반말과 별칭으로 교사와 학생 사이를 수평적으로 조정하는 시도들을 해왔다. 나이에 따라 위아래를 따지는 문화 속에서 수평적으로 관계맺기는 “안녕하세요? 사무총장님” 이렇게 인사하는 것에서 “고양이2), 안녕?”으로 바꿔질 때 시작하지 않을까?
18세 참정권운동을 둘러싼 정치권 셈법을 바라보며, 또 의도했던 아니던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잣대로 등장한 청소년 정치 참여를 바라보며, 이 다툼의 시작은 나이와 권위로 아이들을 누르는 어른들은 그저 종이호랑이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각주
1)보단 안데르센, 소렌한센, 제스퍼 젠센이 지은 책으로 19세기 권위주의적 빅토리아식 교육시스템에 저항하기 위해서 쓰여졌으나 현재까지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2)고양이는 나의 별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