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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⑦ 쿰부히말 마지막 이야기] 고쿄피크 가는 길..
기획/특집

[⑦ 쿰부히말 마지막 이야기] 고쿄피크 가는 길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7/02/14 09:55 수정 2017.02.14 09:55














↑↑ 고쿄피크 가는 길.
ⓒ 양산시민신문















 
↑↑ 이상배
알피니스트
(사)영남등산문화센터 이사장
체육훈장 기린장 수상
세계5대륙 최고봉 등정
ⓒ 양산시민신문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빙하 호수 비경을 간직한 고쿄피크(5천360m)로의 트레킹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 다음으로 쿰부히말라야에서 인기가 높은 코스다. 해발 5천m 고지에 아름다운 호수가 3개나 있고, 히말라야 8천m 봉우리인 에베레스트(8천848m), 로체(8천516m), 마칼루(8천463m), 초오유(8천201m)를 다 구경할 수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 코스를 외국인에게 처음 개방한 것은 지난 1981년. 하지만 국내 트레커 경우 지금까지 캉주마∼포르체텡가∼돌레∼마르체모를 거쳐 고쿄피크에 이른 뒤 다시 같은 길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코스를 주로 이용했다. 이번에 소개할 ‘랜조패스를 통한 고쿄피크 코스’는 아직 국내에서는 낯선 구간이다.

고쿄피크트레킹은 루클라에서 시작한다. 루클라에서 남체바자르까지는 에베레스트 트레킹 코스와 같지만 이후 타메∼랜조패스∼고쿄 코스를 밟게 된다. 기존 고쿄피크 트레킹 코스보다 힘들지만, 에베레스트 동쪽을 조망하는 재미가 크다. 에베레스트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중 하나가 바로 고쿄피크다. 그러나 코스가 길고 도중에 롯지가 없어 쉴 틈 없이 걸어야 하는 고충도 만만치 않다. 














ⓒ 양산시민신문



남체바자르에 도착한 뒤 이틀간 고소순응 훈련을 거쳤다. 그리고 타메(3천820m)로 출발했다. 도중에 타모(3천493m)에 못 미친 숲속에서 고산족을 만났다. 타모에서 점심을 먹고 타메에 도착하니 저녁이었다. 남체바자르에서 타메까지는 9.8㎞. 하루 동안 꽤 많이 걸었다. 타메는 에베레스트 최다 등정자인 아파(Apa) 셰르파의 고향이다. 아파 셰르파 동생이 운영하는 써머트롯지에 여장을 풀었다. 


롯지 안은 아파 셰르파의 등반 사진들로 도배를 해 놓았다. 아파 셰르파는 에베레스트를 세계 산악인 중 가장 많이 오른 대기록(2011 현재 20회 기록) 보유자다. 하지만 이날 트레커들을 사로잡은 것은 마을축제였다. 우리나라 대보름축제같은 마을축제가 열렸다. 마을사람과 외국인들이 한데 어울렸다. 마을사람들의 두 박자 춤이 단순하면서도 참 흥미로웠다.

이튿날 랑덴(4천350m)으로 향했다. 랑덴으로 오르는 길은 광활한 초원지대로 1996년 초오유(8천201m) 원정대 셰르파 였던 앙푸르바가 살고 있었다. 앙푸르바가 건네주는 오렌지 주스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잠시 휴식을 가졌다. 히말라야 찬 공기가 걸음을 힘들게 했다. 계곡 건너편으로 낭파라에서 넘어온 티벳인들이 야크를 몰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500년 전 동티벳에서 히말라야를 넘어온 이들 셰르파는 바람이 거세고, 춥고, 살이 쪼그라드는 이곳에서 농업과 목축으로 삶을 지탱해 왔다.
















↑↑ 고쿄피크에서 바라본 에베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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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덴에는 롯지가 2개뿐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중 한곳에 들어가니 움막이나 다름없었다. 연기도 잘 빠지지 않아 잠을 자는 동안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일행 중 한 명이 몸이 좋지 않다고 호소했다. 고소증이었다. 이때는 무조건 1천m 이상 내려가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고소약을 건네주며 포기하지 말자고 격려했다. 모두 작정하고 왔겠지만 막상 현실을 마주하니 힘든 모양이다. 고도를 높일수록 그의 걸음이 온전치 못했다. 자주 휴식을 취했지만 자꾸 뒤처졌다. 가이드 역할을 맡은 마일라와 삼두 셰르파가 그를 도왔다.

고갯마루인 랜조패스(5천345m)에 이르니 모두 지친 표정이다. 날도 어두워 랜턴을 켜고 고갯마루를 내려섰다. 호수 건너로 고쿄가 가물가물 다가왔다. 이곳에서는 에베레스트(8천848m)와 ‘검은 귀신’으로 불리는 마칼루(8천463m)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고갯마루다. 그러나 날이 너무 어두웠다. 지쳐 힘든 발걸음으로 우여곡절 끝에 고쿄에 닿을 수 있었다. 고쿄에서는 식사를 못할 정도로 힘들어 했다. 따뜻한 물을 마시고 보온에 신경쓰고 푹 자라고 하면서 방으로 안내했다.

다음날 고산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 컨디션이 좋은 사람만 데리고 고쿄피크에 올랐다. 고쿄에서 고쿄피크까지는 2㎞에 불과했지만 고도가 500m나 차이가 나 등정이 쉽지 않았다. 다행히 고쿄피크에 올라서니 하늘이 파랗고 너무 맑았다.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두드포카리 호수는 에메랄드빛으로 반짝거렸다. 두드포카리는 고쿄 세 호수 중 가장 위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물빛이 가장 아름답다. 에베레스트와 마칼루, 초오유도 시야에 들어왔다. 대자연의 신비에 모두 넋을 잃고 말았다. 
  















↑↑ 남체에서 샹보체로 오르는 길.
ⓒ 양산시민신문


 
고쿄의 아침은 맑았다. 히말라야 산속 고요함과 신비로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고산증세도 사라졌다. 두드포카리를 비롯해 고쿄의 세 호수를 잇달아 감상한 뒤 하산길을 이어갔다. 내려서는 길이 로맨틱가도이다. 누가 나에게 히말라야에 가는 이유를 묻는다면 히말라야는 감동을 주고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라고 자신있게 말해주고 싶다.

점심은 마체르모(4천410m)에서 현지식으로 먹었다. 고쿄에서 마체르모까지는 7㎞ 정도였지만 조망이 좋았고 게다가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마주하며 들판을 내려갈 수 있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다가오는 이색적인 풍경은 감동 그 자체였다. 돌무더기 길을 빠져나가자 광활한 들판이 나오고, 그 들판의 끝에 이르면 탐세르쿠가 장벽처럼 길을 막고 버티고 있었다. 특히 우리는 다른 트레커들의 등산루트를 이용하는 바람에 이른 아침부터 “나마스테”라고 외치는 네팔 인사를 많이 받아야 했다.


점심 메뉴는 삶은 감자와 계란이었다. 돌레(4천200m)에 잠시 들렀더니 앙도카가 아는 체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녀는 2001년 초모랑마 청소 등반 때 식사 도우미로 함께했던 네팔 아줌마다. 당시 그는 임신 6개월 몸으로 초모랑마 베이스캠프(5천400m)에서 일했다. 그때 뱃속에 있던 아이가 어느새 재롱을 피우고 있었다.

















↑↑ 고쿄피크 정상에서 바라본 쿰부 히말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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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레에서 남체바자르까지는 14.8㎞이다. 제법 먼 길이다. 돌레에서 조금 더 내려와 포르체텡가(3천680m)에서 숙박했다. 고쿄와 비교하면 고도가 1천m 이상 떨어졌다. 덕분에 일행의 컨디션도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숙소에서 세탁도 하고 여유도 즐겼다. 포르체텡가는 굼중과 포르체, 고쿄의 갈림길에 위치해 있다. 고쿄호수에서 흘러내려온 계곡물은 에베레스트에서 내려온 계곡물과 합류해 두드코시라는 강이 된다. 그 강의 목적지는 인도양이다. 

히말라야에서 트레킹을 할 때에는 타인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아니 그럴 이유도 없다. 그냥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바라보면서 걷는 사람이 가장 좋은 트레커다. 그래서 히말라야 트레킹은 철학의 길이기도 하다. 포르체텡가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몽라(3천973m)로 향했다. 몽라도 고개인데, 다시 오르막을 오르려니 쉽지 않다. 끝없는 산허리를 걷다가 쉬고 쉬다가 걸어서 돌아돌아 힘겹게 올라서니 설산의 파노라마가 나를 흥분시킨다. 타르초 깃발이 펄럭이는 레스토랑에 들러 티타임을 가지고 몽라에서 한참을 쉬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에 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아마다블람, 탐세르쿠, 콩데피크가 줄줄이 위용을 자랑했다. 세계 산악인의 연인이라 부르는 아마다블람은 쿰부 골짜기에서 다른 봉우리와 비교가 안 될 만큼 독보적인 존재다. 2004년 동계 등반으로 경남 젊은이들과 올랐던 곳이기도 하다. 저 멀리 에베레스트와 로체(세계 4위 고봉)가 구름 속에 가물거린다.

쿰중(3천800m)으로 내려서는 비탈길에서 포르체에 살고 있는 판노루 셰르파를 만났다. 나를 알아보고 “나마스테 미스터 리”라며 반갑게 인사했다. 한국말을 조금 할 줄 아는 그는 미국 에베레스트 상업대에서 고정적으로 일하고 있다. 2000년 에베레스트 등반 때는 포르체 판노루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의 아내 앙도카는 나에게 샥파(수제비)를 끓여주며 창(네팔 막걸리)도 한 잔 건넸다. 마치 친인척 집에서 손님 접대를 받는 기분이었다. 포르체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야크를 기르며 살고있는 판노루 부부는 부처님의 고향 사람다웠다.

그의 형인 나티 셰르파는 한국원정대와 등반하다 안나푸르나에서 크레바스에 빠져 숨졌다. 히말라야는 내게 참 많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인연의 끈을 만들어 준 곳이다.

남체바자르로 돌아와 잠링 게스트하우스에서 여장을 풀었다. 이제 하루만 더 걸으면 일정이 끝난다. 여러 날 히말라야 산속을 걸어서인지 마음도 몸도 한결 가벼워졌다. 무엇을 내려놓았는지 아니면 버리고 왔는지 몰라도 기분이 정말 좋다. 치킨시즐러(Chicken Sizzler)로 만찬 같은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가보니 남체하늘의 밤별도 오늘따라 정말 반짝였다. 돈을 세면서 살아야 하는데 하늘의 별을 세고 살았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다음날 카트만두로 가기위해 트레킹의 종착역이자 국내선 공항이 있는 루클라에 도착하니 파라다이스 롯지 안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우려한 대로 비행기가 뜨지 않았다. 성질 급한 사람 숨넘어갈 일이 벌어졌다. 도리가 없다. 애를 쓴다고 될 일이 아니다. 포기하고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것도 히말라야에서 배울 수 있는 미덕 중 하나다. 



우리는 기다림 속에서 인내와 겸손을 배우는 게 아닌가 싶다. 히말라야에서 뜻대로 되는 것은 없다. 그래서 더 마음을 내려놓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설령 우리가 시간을 왜 지키지 않느냐며 따지고 들어도, 특별한 이유 없이 짜증을 내도 이곳 사람들은 웃는 얼굴로, 때로는 겸손한 표정으로 우리를 대한다. 그때마다 이런 말이 귓전을 때린다. 

“No problem(아무 문제가 없다)”

3일이 지나고 나서야 카트만두로 날아갈 수 있었다. 우린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사는 인간이다.


>>다음은 안나푸르말 히말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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