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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양산 소년, 하얀 눈밭에 금메달 꽃 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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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소년, 하얀 눈밭에 금메달 꽃 피우다

엄아현 기자 coffeehof@ysnews.co.kr 입력 2017/02/14 09:59 수정 2017.02.14 09:59
어곡초등학교 5학년 박지성 군
전국동계체전서 스노보드 금 획득

5살 때 스노보드 처음 접해
지난해 아마추어에서 프로선수로
각종 선수권 대회서 메달 휩쓸어

연습 장소, 시스템 없는 경남지역
동계스포츠 꿈나무에게 힘든 현실

어곡초등학교 5학년 박지성 군이 하얀 눈밭에 가장 빛나는 메달 꽃을 피웠다. 제98회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 스노보드 남자초등부 평행대회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강원도 메달밭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스노보드 종목에서 경남 선수가 메달사냥을 제대로 했다. 동계스포츠 불모지인 경남의 경사이자, 양산의 자랑이다.

















ⓒ 양산시민신문





“메달 땄을 때… 기분요? 그냥… 음… 얼떨떨했어요” 박 군은 인터뷰에 수줍어하다 멋쩍은 듯 웃으며 대답했다. 영락없는 11살 소년이었다. 하지만 꿈을 묻는 질문에는 달랐다. 진지하고 단호했다. “스노보드 선수요”


박 군은 5살 때 스노보드를 즐기는 아버지를 따라 스키장에 놀러 갔다가 스노보드를 접했다. 처음부터 운동신경과 감각이 남달랐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했다. 색깔은 달라도 항상 메달권이었다. 그 때부터 선수를 꿈꿨다.


당시 양산지역에 스노보드팀이 있는 학교는 없었다. 박 군의 남다른 실력을 눈여겨 본 백승훈 교사가 스노보드팀 창단을 제안했다. 2015년 12월 어곡초에 스키ㆍ스노보드팀이 창단되자 박 군은 그야말로 설원을 날아다녔다. 대한스키협회 정식 선수 등록 후, 지난해 전국종별스키선수권대회ㆍ회장배 전국스키대회ㆍ전국학생스키대회 등 다수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메달(금3ㆍ은3ㆍ동1)을 휩쓴 것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전국동계체육대회만 메달권 밖이었다. 대회 타이틀이 주는 중압감이 컸단다. ‘스노보드 신동’에 대한 주위 기대도 부담됐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경기 출발부터 턴카빙(보드 옆 날 에지만을 이용해 재빠르게 회전하며 고속으로 하강하는 기술)을 시도했다. 물론 ‘꽈당’을 두 차례나 반복하면서 메달권 밖으로 밀려 나버렸다. 하지만 올해 제대로 설욕전을 펼쳤다. 학년이 높은 선배 형들 사이에서 당당히 전국동계체전 1등을 차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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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군은 누가 뭐래도 스노보드 선수다. 장래가 촉망받는 스노보드계 꿈나무다. 하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과정은 그리 녹녹치 않다. 특히 경남에서 동계스포츠 종목 국가대표 선수로 성장한다는 게 쉽지 않다. 아니 가시밭길이 눈에 훤히 보일 지경이다.


물론 쉬운 스포츠는 없다. 선수들은 저마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기량을 키운다. 이 가운데 동계스포츠 선수는 또 하나 감내해야 할 어려움이 있다. 이들이 눈과 얼음을 밟을 수 있는 때는 1년에 고작 3개월. 나머지 계절에는 울며 겨자먹기로 체력 훈련에 매진할 뿐이다. 그만큼 해외 선수에 비해 턱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경쟁해야 한다.


스키장을 두고 있는 지역 선수는 이나마도 다행이다. 박 군과 같은 영남권 선수는 3개월이라도 연습할 장소가 없다. 영남권 유일 스키장인 에덴벨리스키장은 슬로프 경사도 낮은데다, 스노보드 게이트를 꽂을 수 없어 연습장소로 적합지 않다. 매번 선수권 슬로프를 가진 강원도에 올라가 연습을 하는 게 체력ㆍ정신ㆍ금전적 부담이 만만찮다.


아버지 박근환 씨는 “처음 선수권 대회 출전했을 때 속된 말로 ‘듣보잡 경남 선수’에 대한 비아냥이 난무했어요. ‘거기 눈은 오냐?, 썰매장에서 타다 온 거 아냐?’ 화도 났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개인코치 없이 아마추어인 제가 주먹구구식으로 트레이닝했던 터라 이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 전국동계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날, 아마추어 스노보드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친누나랑 기분 좋은 사진 한 컷.
ⓒ 양산시민신문



실제 동계스포츠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부족한 경남과는 달리 강원ㆍ경기권에서 스키와 스노보드는 생활스포츠 수준이다. 당연히 어렸을 때부터 선수육성을 위한 체계적 시스템이 조성돼 있고, 전폭적 지원이 뒷받침되고 있다.


어곡초 백승훈 교사는 “양산은 동계스포츠 종목에 대한 초ㆍ중ㆍ고 연계 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없죠. 당장 내년에 선수가 꿈인 지성이가 갈 수 있는 중학교가 없어요. 더욱이 동계스포츠는 소년체전이 없어 교육청에서 지원하는데도 한계가 있죠. 지자체와 지역사회 관심과 지원없이는 동계스포츠 꿈나무가 성장하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어렵고 힘든 환경과 과정이지만 박 군은 여전히 꿈꾸고 있다. 지금 박 군에게 메달 색깔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설원 위에서 속도를 바람에 가르는 그 기분이 좋고, 가파른 슬로프 위에 꽂혀 있는 게이트를 정확히 통과했을 때 느끼는 그 짜릿함이 좋아, 그저 스노보드를 오래 오래 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박 군의 레이스는 이미 시작됐다. 여타 장애물을 치우는 일은 어른들 몫으로 남겨두고, 앞만 보고 달릴 이 아이를 위해 힘껏 박수쳐 주자. 박 군이 앞으로 어떤 결과로 세상을 또 놀라게 할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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