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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도자기의 문화콘텐츠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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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도자기의 문화콘텐츠 활용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7/02/28 09:59 수정 2017.02.28 09:59













 
↑↑ 조수현
(재)한반도문화재연구원 원장
ⓒ 양산시민신문 
도자기는 일반적으로 도기와 자기를 합쳐서 일컫는 말이다. 도자기 생산 이전에는 토기를 사용했다. 토기는 1천°C 이하 노천요나 가마에서 구워진 것을 말하며, 유약을 입히지 않고 태도나 소성상태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선사시대 빗살무늬토기나 무문토기, 그리고 역사시대 와질토기와 가야, 신라토기 등이 모두 해당한다. 


도자기는 소성온도가 1천°C 이상 고온에서 유약이 시유된 것을 말한다. 이러한 도자기는 중국 월주요에서 전파돼 통일신라부터 기술이 전해졌는데 고려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양산은 고대로부터 도자문화가 매우 발달한 도시다. 최근 지역언론에서 동면 법기리 도요지에 대한 발굴과 복원사업으로 관광자원화를 촉구하는 기사가 실렸다. 또한 양산시립박물관에서는 ‘양산 도자기의 궤적’이라는 특별기획전을 개최해 양산 도자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 일조했다.


양산지역에서 고려ㆍ조선시대 요지는 약 20곳이 확인됐다. 이 가운데 고려시대 청자요지는 원동면 화제리 청자요지가 유일하다. 이 외에도 고려시대 도기를 생산하는 곳으로는 동면 내송리 사송 도기요지가 있다. 한편, 조선시대 분청사기를 생산하는 요지는 원동면 화제리 지나마을 분청사기요지, 사기들 분청사기요지와 동면 가산리 호포 분청사기요지와 상리 분청사기요지 그리고 주남동 분청사기요지가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가산리 호포마을 분청사기요지에서는 지표상에서 관사명자기인 장(長), 양산고(梁山庫), 양산장흥고(梁山長興庫) 등 관사명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러한 명문이 확인되는 경우는 민간에서 자기요를 운영한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직접 자기요를 운영했다는 증거로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에 표기된 국가에서 자기를 생산하는 127곳에 해당하는 관요 가운데 하나로 중요한 의미를 둔다. 


1997년 양산문화원에서 발견한 후 20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경작과 개발 등으로 급속히 훼손됐다. 최근 가산일반산업단지 내에 포함돼 있어 산단조성으로 흔적조차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양산에서 유일하게 자기요지로서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곳으로는 백자를 생산하던 동면 법기리 백자요지다. 이 백자요지는 모두 3곳에 걸쳐 요지가 확인됐는데 1곳만 사적 제100호로 지정됐고, 그마저도 현재 경작으로 인해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2곳 가운데 창기마을쪽에 형성된 백자요지에서는 일본으로 수출된 오기다완(吳器茶碗)이 다량 발견되기도 해 관리가 시급한 상황이다. 이 외에도 조선시대 백자가마로는 하북면 답곡리, 명동 솔밭골, 명동 시래골, 어곡동, 삼호동, 화제리 지나마을, 원동면 선리, 하북면 삼수리백자요지 등이 알려져 있으며, 옹기가마로는 동면 가산리 옹기가마가 유일하다. 이렇듯 약 20여 곳에 해당하는 곳에 도기, 자기, 옹기요지가 전 지역에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 


이 가운데 발굴조사가 이뤄진 요지는 고려시대 도기(유약을 바르지 않는 그릇)요지인 양산 내송리 사송도기요지(양산 사송 보금자리주택조성)와 명동 솔밭골백자요지(골프연습장조성부지)가 유일하다. 특히 명동 솔밭골 백자요지는 (재)한반도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해 2곳의 가마를 확인했는데 양산지역에서는 유일한 자기요에 대한 발굴조사다. 조사 결과, 17세기 전ㆍ중반대 분실요로 임진왜란 이후 조선 백자가마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양산지역에는 고려시대 청자부터 조선시대 분청사기와 백자 옹기를 생산하던 수많은 가마터가 현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존대책이나 관리, 관광자원활용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인근 김해시 경우는 진례면 도예촌을 중심으로 해마다 김해 분청사기축제를 열고 있으며 햇수로 벌써 21년째다. 



정작 20년 가까이 김해지역은 분청사기요지가 확인되지 않아 분청사기요지를 찾기 위해 예산을 들여 지난해 김해 상동면에서 분청사기요지를 겨우 찾았다. 이 요지에 대한 학술발굴조사로 김해분청사기축제는 역사성을 되찾은 것이다. 또한 부산 기장군 경우, 장안신도시와 산단 조성 등을 통해 발굴조사한 자기요 역사성을 바탕으로 장안사 인근에 대규모 도예촌을 조성, 영화와 아동극장 등 관광자원화 상품을 연계하고 도자기 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이처럼 양산시는 김해나 부산에 비해 풍부한 인적자원(도예가)과 원료(가마요지)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법기리 백자요지에서 일본으로 수출된 오기다완이 다량으로 확인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조차 인식을 못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임진왜란이 말없는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임진왜란으로 인해 일본으로 수많은 조선도공이 잡혀가서 일본 도자기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 됐음에도 정작 일본 도예가들은 아직까지도 조선시대 이도다완(조선찻사발)을 생산하던 곳을 찾기 위해 혈안이다.
 
조선 도자기 기술을 가지고 현재 일본은 일본 도자기 발상지인 큐슈 아리타현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아리타 도자기축제를 열고 있다. 이 축제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자기축제가 돼 해마다 100만명 이상이 찾는 관광축제로 발전했다. 아리타현은 도자기 도시답게 도자기와 그 파편을 이용해 도시 경관을 아름답게 꾸민 것이 인상적이다. 

양산도 더 늦기 전에 지역에 분포하는 도자기 가마터 발굴은 물론, 관리와 보존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전문가와 양산 도예가와 연계해 양산 도자기 문화원형을 살려 문화콘텐츠 활용에 대한 모색도 마련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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