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네팔ㆍ히말라야 배낭여행⑨] 히말라야에서는 서두르지 마라..
기획/특집

[네팔ㆍ히말라야 배낭여행⑨] 히말라야에서는 서두르지 마라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7/03/14 08:56 수정 2017.03.28 08:56












ⓒ 양산시민신문













 
↑↑ 이상배
알피니스트
(사)영남등산문화센터 이사장
체육훈장 기린장 수상
세계5대륙 최고봉 등정
ⓒ 양산시민신문 


‘풍요의 여신’은 안나푸르나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안나푸르나는 히말라야 중부지역에 위치한 연봉으로 제1∼4봉과 남봉, 강가푸르나봉 등 7~8천m급 여섯 봉우리를 품고 있다. 그 여신의 품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은 지난 3월 말이었다. 


코스 이름은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 안나푸르나 거의 모든 사면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트레킹 구간으로, ‘ABC’로 불리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이나 ‘푼힐전망대 트레킹’과는 거리와 시간, 난이도에서 차이가 났다. 총 거리는 231.8㎞. 그중 차량통행 구간인 베시사하르∼참제, 마르파∼베니 구간을 제외한 도보 구간만 131.2㎞에 달했다. 이를 꼬박 9박 10일 동안 걸었다.

들머리는 베시사하르로 정했다. 네팔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25인승 버스를 전세 내 6시간 동안 포장도로를 질주한 뒤에야 겨우 도착할 정도로 멀었다. 도중에 무글링과 둠레를 거쳤다. ‘무글링’은 히말라야 삼거리 상업도시다. 휴양도시인 포카라와 인도 국경도시인 소나울리로 갈라지는 경계도시기도 하다. 이곳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식당에 들러 네팔 전통음식인 달밧을 숟가락 없이 손으로 떠먹는 특별한 체험을 했다. 여행은 좀 불편하더라도 그 나라 문화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둠레는 무글링에서 1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 둠레∼베시사하르 구간도 포장길이지만 커브가 워낙 심해 차량은 거의 속도를 내지 못했다. 














ⓒ 양산시민신문



베시사하르에 도착한 뒤 차량을 바꿔 탔다. 전세버스를 보내고 참제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이용했다. 마을버스는 15인승 규모로 작은데다 탑승객이 많아 콩나물시루였다. 어떤 승객은 아예 지붕 짐칸에 올라앉았다. 마을버스 속도가 시속 30㎞를 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산허리를 한참 돌고 난 뒤 해발 1천430m의 참제에 닿았다. 저녁식사로 볶음밥과 닭고기 요리를 먹고 히말라야 품속에 몸을 뉘었다. 포근했다.

이튿날, 본격적인 트레킹에 나섰다. 첫 목적지는 ‘다네큐’(2천300m)였다. 길을 나선지 2시간 30분 만에 중간 기착지인 ‘탈(Tal)’에 도착했다. 탈은 마르샹디 강의 강폭이 갑자기 넓어지는 계곡에 위치한 산중마을이다. 산중턱에 폭포도 몇 군데 보인다. 쏟아지는 힘찬 물줄기에 모두가 놀라서 탄성을 질렀다. 이곳에서 국수로 간단히 끼니를 때웠다. 일행은 “미또차”를 연발했다. 미또차는 네팔어로 ‘맛있다’란 뜻이다. 


식사가 끝나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카르테’로 가는 현수교 부근에서 길을 차단당했다. 다이너마이트 폭파가 있을 거라며 공사인부들이 길을 막은 것이다. 요즘 히말라야에서 이런 폭파 광경을 목격하는 것은 드물지 않다. 대자연의 훼손이 안타깝기만 하다. 히말라야는 신비로움의 천국이다. 신비로운 자연 그대로 두면 어떨까하는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탈에서 다라파니까지는 2시간 남짓 걸렸다. 다라파니는 마나슬루와 다네큐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트레커 뿐 아니라 히말라야 원정대도 이곳에서 신원을 확인한다. 트레킹 허가증을 제시한 뒤 영문이름과 국적 등을 기입하면 통과절차가 끝난다. 


다라파니에서 숙소인 다네큐까지는 1시간이 더 걸렸다. 결국 참제에서 다네큐까지 20.2㎞의 거리를 5시간 반 만에 걸어왔다. 시간당 3.3㎞ 속도로 걸은 셈이다. 국내 트레킹 평균 속도가 시간당 3~4㎞라고 볼 때 느린 걸음이 아니고 정말 빨리 걸어 온 것이다. 산길이 정겹고 걷기 좋았지만 사실 히말라야에서 속보는 금물이다. 트레킹 뿐만 아니라 먹는 것도, 구경하는 것도 모두 ‘천천히’ 해야 한다. 그것이 히말라야 트레킹 안전수칙이고 매뉴얼이다.

다네큐는 구룽족 10여 가구가 숙박업으로 살아가는 산중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산중마을의 여유로운 인심을 기대했다가는 곤욕을 치른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트레커 때문에 셈법이 우리보다 더 빠르다. 음식을 이것저것 다 주문했다가 낭패를 본 트레커가 한둘이 아니다. 주문서에 필요한 음식을 적어 다툼의 소지를 없애는 것이 좋다. 

생각이 없으면 고통도 없다. 이 말을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다 보면 자주 읊조리게 된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보통 걷기와 다르다. 높은 산세부터 걷는 이의 마음을 압박하지만 도시에서처럼 서두른다고 결코 빨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네큐에서 아침을 먹고 가파른 길이 이어지는 언덕을 지그재그로 올랐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티망에 올라서니 마나슬루(8천156m)가 지나가던 구름을 걷어내고 있다. 마나슬루는 히말라야 14좌 중 8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산스크리트어로 ‘영혼의 산’으로 불린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니 정말 대자연 정령이 느껴졌다. 참고로 마나슬루는 1956년 5월 9일 일본등반대가 초등했으며 한국원정대에겐 영혼의 산이 아니라 비운의 산으로 인식돼 있다. 

티망에서 차를 한 잔 즐긴 뒤 다시 도보 여행에 나섰다. 산간도로와 흔들다리를 잇달아 건너니 오래된 마을인 탄초크가 나왔다. 동네 아낙들이 빨래하는 풍경이 우리나라 1960년대를 보는 것 같았다. 


그 풍경을 쳐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춰 버렸다.

고토에 도착했을 땐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다. 5시간 이상을 걸었기 때문이다. 고토는 3년 전 한국초등이란 타이틀로 히무룽(7천126m) 등반을 위해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 낯설지 않다. 안나푸르나 종주 코스와 나르푸 트레킹 코스도 여기서 갈라진다. 네팔 현지식으로 늦은 점심을 히무룽 롯지에서 때운 뒤 30여분 거리에 있는 차메(2천670m)로 느긋하게 올랐다. 고토와 차메는 고도 차가 거의 없어 길을 걷기가 아주 편했다. 차메는 히말라야 산중마을 중 아주 큰 편에 속한다. 병원과 은행도 있다. 

우리는 마르샹디 만델라호텔에 투숙했다. 분위기가 호텔이라기보다 펜션에 가깝다. 저녁식사는 볶음밥에 반다고비(양배추)를 곁들였는데 다들 잘 먹었다. 시나브로 대자연에 동화돼 간다는 증거다. 가게에 들러 월베라(토마토)와 까끄루(오이)도 3㎏가량 구입했다. 트레킹 도중에 먹을 간식으로 그만이기 때문이다.

히말라야가 아무리 높다고 해도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새로운 태양이 아침을 몰고 왔다. 따또두토(따끈한 우유차)와 오믈렛으로 아침식사를 끝낸 뒤 람중히말(6천932m)의 설산을 바라보며 계속 이어지는 순례여행 길을 다시 나섰다. 차메에서 두쿠르포카리(3천60m)까지는 2시간 30분가량 걸렸다. 도중에 아름다운 숲과 설산을 무수히 만났다. 정말 신비스러웠다. 특히 안나푸르나 2봉(7천937m), 안나푸르나 4봉(7천925m), 안나푸르나 3봉(7천555m), 강가푸르나봉(7천454m)로 이어지는 연봉의 스카이라인은 ‘아름답다’가 아니라 심지어 ‘행복했다’. 그러나 고도가 3천m를 넘다보니 일행 중 몇몇은 고산증 같은 피로감을 살짝 느낀 듯했다. 결국 점심으로 모모(만두)를 먹고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다음 목적지인 로우피상(3천200m)까지도 걷는 길이 너무 좋았다. 로우피상에 있는 틸리초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고 잠시 마당에 서니 앞쪽으로 피상피크(6천92m)가 아름답고 웅장하게 다가왔다. 다들 아름다운 설산에 눈을 뗄 줄 몰랐다. ‘분노의 강’으로 불리는 마르샹디 강을 끼고 시작한 트레킹이 5일째에 접어들었다. 구룽족의 목가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마을을 걷다가 순간 티벳의 황량한 들판을 떠올리게 하는 고원지대도 지났다. 걷기여행 코스로는 부족함이 없는 선택이었다.

>>안나푸르나 히말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