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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아현 기자 coffeehof@ysnews.co.kr | ||
ⓒ 양산시민신문 |
“에휴~ 내가 우리 아이 전교회장 선거 때 돈을 얼마나 썼던지…”
위험한 얘기였다. 김영란법이 지난해 9월부터 전면 시행됐기 때문에 청탁을 목적으로 촌지나 선물을 하는 행위는 명백히 위법이다. 기자와 식사자리에서 자신의 위법 행위를 실토한 것이다. 밥 한 숟가락을 크게 떠 입에 구겨 넣고 최대한 태연한 척하며 물었다.
“에구, 회장님. 어디에다 얼마나 썼는데요?”
“엄 기자, 말도 마. 벽보, 어깨띠, 현수막, 피켓 제작한다고 한 20만원 쓰고, 선거운동하면 똑같은 옷이나 악세사리를 해야 한다고 남자 친구들은 모자, 여자 친구들은 머리띠 산다고 또 한 30만원 썼나? 그나마 나는 아는 사람이 POP예쁜글씨를 하고 있어서 저렴하게 한거야”
다소 기대(?)에는 못 미치는 대답이었지만 초등학생 선거에 무슨 피켓과 현수막이 필요하다는 건지…. 정당 당원도 아니고 똑같은 옷으로 맞춰 입어야 하는 선거운동이라니….
사무실에 돌아와 자료를 검색해 봤다. 서울 강남구에서나 있을만한 일이라 솔직히 그 학부모 치맛바람이 유별난 것 아니냐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지극히 당연한 일처럼 성행하고 있었다. 양산지역은 비교적 평범한 편이었다.
다른 지역은 선거 연설문 대행업체에 회장선거 사진 전문 스튜디오까지 있었다. 더욱 놀라운 건 선거철 스피치 학원에서 개설하는 ‘반장선거 대비반’이다. 1대 1 맞춤형에다 전교 회장 선거로 선거규모가 커지면 회당 수십만원 선까지 비용이 올라간다. 발표력뿐 아니라 성대모사, 유모 스피치에다 마술이나 간단한 악기연주 등 개인기 등을 가르친다.
선거공약도 어른 선거 뺨치는 수준이다. ‘학급마다 에어컨을 바꿔주고 여름 내내 틀게 해주겠다’, ‘화장실에 비데와 음악시설을 설치해 주겠다’ 등 일단 ‘지르고 보자’식 전형적인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도지는 불치병과도 같은 포퓰리즘 공약이 초등학생 선거까지 번진 것이다. ‘당선되면 전교생에 간식을 쏘겠다’는 공약은 식상할 지경이다.
과열양상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아이 ‘스펙 쌓기’를 위해서다. 과거에 국제중 등 입시에서 ‘반장 가산점’이 있었다. 현재는 사라졌지만, 자기소개서나 학생 생활기록부 등에 한 줄이라도 들어가는 게 입시에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물론 과거 학창시절에도 ‘돈 선거’는 있었다. 학부모가 교사에게 살짝 촌지를 건네면 교사는 투표를 앞두고 한 아이를 상당히 칭찬하는 말을 쏟아낸다.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전혀 상관없기도 했다. 하지만 최소한 아이들 사이에서는 공정한 선거운동을 했다. 삐뚤빼뚤한 손 글씨나 색종이를 손수 오려 붙인 포스터를 붙이고, ‘화장실 청소 도맡아 하겠다’, ‘체육시간 늘려달라고 건의 하겠다’ 등 친구들과 머리를 짜내 내놓은 공약도 제법 쓸 만했다. 부모 치맛바람으로 뒤에서 무엇을 하던지, 일단 아이들 눈에 보이는 선거운동은 공명정대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들 눈에 비치는 것조차 돈이다. 돈이 있어야 학생회장 선거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자괴감마저 심어주고 있다. 4월 보궐 지방선거와 5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양산지역 유권자들은 더는 포퓰리즘 공약이나 돈 선거운동에 현혹되는 모습을 보이지 말자. 그딴 짓 안해도 당선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른들 선거판에서 먼저 보여주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