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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수현 (재)한반도문화재연구원 원장 |
ⓒ 양산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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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도시 문명은 강과 바다를 끼고 발달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도시가 발달한 지역을 보면 대부분 도심에 강을 끼고 형성된 곳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이다.
경남 동남부에 위치한 양산 역시 양산천을 중심으로 이뤄진 원도심과 회야강을 중심으로 이뤄진 웅상지역, 낙동강 강안에 이뤄진 물금읍을 중심으로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도시가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양산에는 33개 하천이 있다. 낙동강은 국가 하천이고, 양산천, 회야강을 비롯한 나머지 하천들은 지방하천에 속한다. 이들 하천은 다음과 같은 특색을 가지고 있다.
첫째, 낙동강을 제외하면 유로가 짧고 거의 직선상이며, 또한 하상 구배가 급하다. 둘째, 거의 대부분 단층곡에 지배된 적종 하천으로 단층 선곡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셋째, 낙동강에 흐르는 양산천 하구 일대를 제외하면 유역에 충적 평야 발달이 미약한 편이다.
이상과 같은 특성상 양산은 고대로부터 양산천 하류인 원도심지역과 낙동강 본류에 펼쳐진 물금지역에 충적평야가 넓게 발달돼 도심을 이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중 가장 넓게 충적평야가 펼쳐진 곳은 현재 물금읍이다. 이곳은 1990년대 들어 대규모 신도시택지개발로 인해 화려한 도시로 탈바꿈했다.
물금은 삼국시대부터 황산진으로 불렸다. 이러한 지명은 낙동강 옛 이름인 황산강에서 유래됐다. 조선시대 1413년에는 원동면과 함께 서면으로 불리다가 상서면으로 분리됐고, 1936년 물금면으로 개칭됐다. 물금은 고대로부터 가야와 신라 접경지로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황산진 전투 등을 비롯한 관련문헌이 다수 기록될 만큼 중요한 요충지임은 틀림없다.
물금은 고대로부터 철을 생산하던 철광산으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 남부지역 철광산은 물금, 김해, 울산지역이 대표적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왕실에 많은 양의 철을 공납했다고 기록돼 있다. 특히 물금과 김해지역은 1950 ~60년대까지도 철광산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가야는 철을 배경으로 성장한 나라다.
철을 이용한 대량의 농기구로 농업경제 활성화를 이루고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 주변 가야 각국과 왜로 수출해 신라와 대등한 관계를 이루기도 했다. 신라가 그토록 황산진에서 가야와 격전을 펼친 이유는 영토 확장과 더불어 물금광산을 차지하기 위함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를 증명하듯 1991년 물금신도시 조성부지에서 고대 제철유적이 확인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물금광산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양산 중요한 경제기반을 이룬 철을 생산하던 대규모 제철소라 할 수 있다.
물금은 고대 삼국시대 가야와 신라 요충지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황산역 설치로 미뤄볼 때 교통 요충지 기능을 충실히 했다. 황산역은 현재 우리나라 철도 중심역으로 비유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중앙직속기관으로 전국적으로 40개 찰방역을 설치했다. 찰방은 역정 최고 책임자였으며, 세력 또한 막강해 양산지역에 어사가 순찰을 돌 때 보필했을 뿐만 아니라 군수 치정을 견제하는 역할까지도 했다고 한다.
황산역은 조선 세조 때 만든 40개 찰방역 가운데 하나며, 11개 속역을 뒀다. 이후에는 11개 속역 외에 동래ㆍ언양ㆍ밀양 등지에 16개 역을 관할했다고 기록된 것으로 봐 후대에 황산역의 찰방역 역할이 더욱 커진 것을 알 수 있다. 황산역에 종사하는 역리만 7천638명이고, 또한 남ㆍ여 노비 1천176명 등 모두 8천814명이 소속됐으며, 큰 말 7마리, 중간 말 29마리, 짐 싣는 말인 복마(卜馬) 10마리 등 46마리의 말이 있었다고 한다.
황산역에는 지방관청이 있었던 양산읍성과 더불어 조선시대 중요한 관청이 존재했다고 한다. 황산역에는 동헌, 내동헌, 장적고, 창고, 작청, 관청, 장적청, 형리청, 관노청, 사령청, 일아정, 환취정 등 관청 건물 10동과 누각 2동으로 구성돼 꽤 넓은 공간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다가 황산역은 1857년에 낙동강 범람으로 잠기자 현재 양산시 상북면 상삼리 439번지 일대로 옮겨 1895년에 역원제가 폐지될 때까지 40여년간 존속했다고 한다. 황산역은 현재 물금읍 서부리 690번지로 알려져 있으며, 이 곳은 현재 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2012년 양산시에서는 황산역 부속건물인 일아정에 대한 복원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또한 관련 향토사학자 등이 황산역을 복원해 황산 베랑길 조성사업과 연계, 지역 관광자원으로 개발하자는 제언을 하기도 했다. 현재 물금은 신도시 조성으로 인해 옛 원형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원주민보다 외지에서 유입된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고, 대부분 젊은 층이 많아 지역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자연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당연히 지역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지역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양산이라는 한 울타리에서 소속감과 애향심을 가질 수 있는 문화정책이 시급하다.
인공적인 공원 조성이나 대형마트, 영화관 등 문화여건 충족도 필요하지만, 물금이라는 지역 정체성을 찾고 그것을 상징하는 중요유적지인 물금광산과 황산역에 대한 보존정책과 함께 유적지를 연계한 관광자원활용에도 보다 더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이제는 양산시 위상이 과거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높아졌다. 30만이 넘는 인구와 1조원에 육박하는 예산에 맞게 문화관광정책이 보다 더 좋은 결실을 맺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