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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추련 양산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통합지원팀 | ||
ⓒ 양산시민신문 |
이처럼 청소년이 가지는 한계점은 바로 논리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청소년 인권의식과 생활양식은 크게 향상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작 자신 논리를 전달하지 못해서 빚어지는 문제들이 청소년 인권을 묵살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인권’이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정당하고 필수적인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자격입니다. 청소년도 당연히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이 있지만 상황이나 요구 내용에 따라서는 정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단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인권을 논하는 것은 문제행동을 해 놓고 억지를 부리는 것과 같다고 느껴져 무시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특히, 청소년 인권을 이야기할 때 가장 주목받는 곳은 학교입니다. 예전에는 교사가 학생에게 행하던 체벌이 그랬다면 요즈음은 학교생활 규정 중 용모 규정이 청소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모습 가운데 하나기도 합니다.
“징계가 너무 억울합니다. 이번에는 담배 안 피웠는데 제대로 보지도 않고, 선생님들은 제 이야기를 아예 듣지를 않습니다”
청소년은 억울한 일을 몇 번 당하고 나면 어른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서 도리어 반항을 하게 됩니다. 여러 번 중 한두 번은 정말 하지 않아서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선생님은 청소년이 자신 잘못을 숨기려고 억지로 우긴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억울해서 아니라고 강하게 호소를 해 보지만 오히려 선생님에게 대든다고 징계받는 청소년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몇 번 경험한 청소년은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으로 협력적이지 못한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사회봉사 징계를 받고 온 청소년에게 인권 감수성 교육을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갔지만 아직도 인권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릅니다. 사회에서는 청소년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소외되고, 가정과 학교에서는 학업에 더욱 정진해야 한다는 어른 생각이 앞서 청소년은 기본 권리를 이야기조차 못하게 되면서 마음이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인권이 살아있지 않은 곳에서 청소년은 온갖 폭력과 중독 행동을 자기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삼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 청소년에게 인권이 살아 있어야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줄 어른이 필요합니다. 청소년 인권을 논하는 것은 그들 입장을 대변해 주는 출발점입니다. 이를 계기로 외면 받고 있다고 느끼는 청소년 인권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지지해 줄 수 있는 어른 마음이 모아지길 기대합니다. 과거에 당연했다고 해서 현재도 당연할 것이라는 수직적인 관계를 성숙시킨다면 청소년 인권은 점차 증진될 것입니다.
기성세대가 먼저 청소년 인권을 존중하고, 청소년도 기성세대 역할을 수용할 수 있는 상생 정신이 만들어질 때 이 땅 청소년은 더욱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 첫 단추가 청소년 18세 선거권 확대가 되고, 청소년 인권이 살아나는 통로가 돼 환한 빛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