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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언서 동원과학기술대학교 사회복지행정학과 교수 | ||
ⓒ 양산시민신문 |
토색질한 전임자를 명관이라고 해야 자신의 토색질을 합리화하고, 적어도 자기모순은 범하지 않는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해방 후 우리 사회는 구관이 명관이라는 등식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정권이 바뀌면 언제나 전 정권 잘못을 지적하면서 청산대상으로 삼았다가 전임정권 말기와 같이 변질했고, 후임 정권에 의해 청산대상이 되는 불행한 결과를 반복했다.
얼마 전, 80년대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후배를 만났다. 그 당시 “왜 학생 본분을 버리고 너희들 희생을 담보로 시위에 가담하느냐”고 물으니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 현실을 당장 뒤집어야 한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지금 너희들 시위로 이 시국을 당장 바꿀 수 있느냐”고 물으니 “언젠가는 바뀔 수 있다”는 나름 신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30년 세월동안 기득권의 두꺼운 벽을 쉽게 허물지 못하다가, 결국 지난 가을부터 소위 보수와 진보의 대충돌이 일어났다. 이들 진보세력은 민주화와 노동문제, 부정부패, 사회적 불평등, 권위주의 청산 등 문제에 저항해 화염병과 최루탄 가스로 얼룩진 아스팔트 위를 헤맸던 노동자와 당시 학생이 주죽이 됐다. 여기에 보수의 오랜 적폐에 염증과 분노를 느낀 시민이 합세한 것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푸념 섞인 표현과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헌정사상 최초로 국정농단 책임을 물어 대통령을 탄핵했다. 실정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진행하고 있고 5월 9일 대통령 선거를 통해 진보정부가 출범했다. 그럼으로써 진보세력이 일단 승리한 것처럼 보이고, 보수는 거의 궤멸상태까지 갔다고도 볼 수 있게 됐다.
“너 자신이 훗날 그 위치가 됐을 때 그들처럼 하지 않으면 적어도 30년을 기약할 수 있지만 지금 너희들이 희생된다면 당장 내일 바뀔지라도 그 기한을 장담할 수 없는데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지를 생각하라”는 말을 후배에게 한지 30년이 흘렀다. 이제 진보는 오랜 기다림 끝에 명실상부하게 그 위치가 차지했다. 이제 그들은 스스로 정체성을 증명해야 한다.
진보 정체성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털어도 먼지 안 나는 신선함, 그리고 솔직함으로 대변돼야 한다. 구관의 먼지는 먼지라고 하면서 자기 먼지에는 관대하다면 그 누가 인정하겠는가. 구관이 하던 행위를 똑같이 한다면 엄청난 자기모순이다. 최근 장관 임용을 위한 청문회와 정부 인사에서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아 우려스럽다.
사람들은 자신 이해관계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신이 손해 보면 그것이 작더라도 저항하면서 이득에는 침묵하는 경향이 있고, 타인 잘못은 잘 꼬집으면서 자신 허물에는 관대하다. 이를 인지상정이라고 강변할 수도 있으나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면 곤란하다. 남에게 잘하라고 하지 말고 자신부터 잘 하려는 자세와 행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말처럼 신관이 구관 행태를 반복하면 또 다시 청산대상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패자는 당당한 패자로서 결기를 가지고 스스로 반성이 필요하다. 발목잡기식 행태에서 과감히 탈피해 협조와 비판을 병행하는 합리적 보수 자세가 절실하다. 지금 이 시간을 흘러가고 있고 또 다시 공수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은 고금 철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