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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석 카페사회사업가 | ||
ⓒ 양산시민신문 |
그곳이 바로 내 마을의 기억공간 소소봄이다.
오늘 이야기는 바로, 기억에 대한 부분이다. 7년 동안 한 자리에 있으면서 건물주는 3번 바뀌고, 이웃가게들도 절반 이상 바뀌고, 없던 길도 생긴 소소봄에는 늘 마을주민들이 찾아온다. 카페가 커피나 간단한 먹을거리를 파는 곳이기는 하지만, 10년을 바라보는 지금, 단골이라는 마을주민들은 각자 기억을 찾으려 카페라는 공간으로 오는 것 같다.
어느 날 결혼하기 전에 자주 방문했다는 그녀는 결혼 후에 먼 곳으로 이사를 갔는데, 부산에 왔다가 생각이 나서 일부러 찾아왔다고 했다. 그윽하게 소소봄을 둘러보며, 하나하나 사진을 찍어가던 그녀 뒷모습에서 외로움과 소중한 추억이 회상하고 간직하려는 설렘을 느낄 수가 있었다.
“고맙습니다. 늘 잘해주셨어요, 또 올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별말씀을요, 어디 가서든 잘 지내세요, 잊지 않고 찾아와줘서 고맙습니다”
그녀가 가고 나서 잠시 동안 여운이 빈 카페를 빙 돌았다.
양산은 언제부터인가 이사가 정말 많은 곳이다. 새 아파트가 하루가 멀다 하고 만들어지고, 이동네에서 저동네로 이동하는 일도 잦다. 주변 이웃들은 정말 잠시 스쳐가는 인연처럼 느껴진다. 아파트에 사는 필자도 입주세대인데, 이제는 절반 이상 이웃들이 바뀌어버려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처음 보는 이웃들 얼굴을 익혀야 인사를 제대로 할 수 있다. 한순간 인사할 시기를 놓쳐버리면, 서먹해지기 때문이다.
때론 아이들이 너무 커버려서 “새로 이사 왔니?” 물어보면 “계속 살았는데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아이들 얼굴 역시 새로 익혀야 한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것과 같은 라인에 사는 것을 기억해주지 않으면 엘리베이터 안은 생각보다 곤혹스러운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엘리베이터가 이웃들을 기억하는 소중한 장소라는 생각을 한다. 마치 소소봄처럼 말이다.
소소봄에서는 공연을 꽤 많이 했다. 그중에 아이들 공연이 많았는데, 주로 마술공연과 그림책 공연이었다. 그때 왔던 꼬마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돼 소소봄에 온다. 아이들에게는 소소봄이 공연을 보는 곳이었고, 그림책을 읽어주던 곳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렇게 아이들은 소소봄을 지나갈 때 인사를 하곤 한다.
다시 소소봄의 기억공간을 이야기 하자면, 최근에 새로운 이웃들이 소소봄을 방문한다. 어디에 사시냐고 여쭤보면 대부분 증산신도시에서 오셨다고 한다. 카페를 한번 둘러보고 시원한 커피 한 잔과 원두 한 봉지를 사가시면서 앞으로 자주 올 것 같다고 이야기하신다. 그때 필자는 다시 그녀를 회상했다. 기억이란 참 소중한 것이구나, 처음 느낌 그대로, 간직하고 향유했던 시간들이 뭉쳐서 실타래처럼 엮이고 나면, 떠나갈 때 그 장소에 다시 방문해서 풀어보고 싶어짐을 알게 됐다.
한 번도 소소봄을 운영하면서 거기까지 생각해보지는 못했다. 그렇게까지 감성적이지 못했고, 그렇게 공간이 기억되지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 역시 그런 기억공간을 많이 가져보지 못했다. 소중한 기억공간을 잘 지켜내는 것 또한 소소봄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마을 사람들 가운데 떠나는 분들에게는 다시 와서 자신을 기억하고, 이웃을 기억하고, 마을을 기억하러 오실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해내게 하는 것이 이웃들이다.
끝으로 최근의 일화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호우가 집중되던 어느 오후, 자전거를 타고 가던 초등학생이 비를 피하려 소소봄 처마에 잠시 머물렀다.
“가게 들어와서 비 좀 닦고 가렴”
“그래도 될까요?”
마른 수건과 물 한잔 주고 나서, 비가 그칠 때까지 한 시간 정도 흘렀다. 비가 잠잠해질 무렵 아이가 책장에서 기웃거린다. 자세히 보니 책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금세 가지런하게 정리된 책장을 보니 기분이 좋다. 아이가 떠날 때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과 한번 놀러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