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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가시나 니는 왜 일 안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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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 니는 왜 일 안하노?!”

엄아현 기자 coffeehof@ysnews.co.kr 입력 2017/08/08 10:12 수정 2017.08.08 10:12













 
↑↑ 엄아현
coffeehof@ysnews.co.kr
ⓒ 양산시민신문 
10여년 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양산에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몇 달 전부터 만남을 기약해 왔다. 몇날며칠을 미루다 결국 여름휴가 때 만남이 성사됐다. 장소는 키즈카페였다. 여름방학 중인 꼬맹이들을 데리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엄마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한참을 사는 얘기, 애 키우는 얘기를 나누다 문득 화가 났다.

“가시나. 니는 왜 일 안하노?!”
“애 셋 키우면서 내가 일까지 해야 되나?!”
“공부한 게 아깝지도 않나?”
“아니, 나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데?”


공부를 꽤 잘하는 친구였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 법대에 진학했다. 졸업 후에도 사시 준비로 몇 년을 신림동 고시촌에서 살았다. 사는 게 팍팍해 서로 소원해졌고 잊고 지내다 얼마 전 소식이 닿은 것이다. 그런데 애 셋을 키우면서 가정주부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의외였고, 진심 싫었다. 


여성들이 사회에서 능력을 쓰지 않는 게 싫다. 아이들이 성장한 후 사회에 나와 또다시 일을 찾아 헤매는 그 시간이 아깝다. 대학 졸업 후 중단 없이 경력을 쌓았으면 좋겠다. 어떤 분야든 어떤 영역이든 경험과 시간은 분명 자산이 된다고 확신한다. 때문에 자산이 부족한 경력단절 여성이 뒤늦게 사회에 나오면 경쟁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게 싫다. 친구 남편은 애 셋 키우는 8여년 시간 동안 열심히 직장생활 했고, 곧 그 경험으로 개인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다. 아내로써 충분히 기쁘고 축하해 줄 일이지만, 그게 내 친구 인생 전부가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지난달 양산시어린이집연합회 주관 영ㆍ유아 부모 토론회가 열렸다. 양산시장과 영유아 부모들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이례적인 자리였다. 많은 부모가 참석했고, 다양한 의견과 건의사항이 쏟아졌다. 그런데 이 토론회에서 맞벌이 가정은 빠져 있었다. 맞벌이나 워킹맘에 대한 정책 제안이 없었다. 



지난해 본지에서 주관했던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육아정책 간담회에서도 일ㆍ가정 양립에 대한 정책 제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유는 한 가지다. 일하는 시간에 열리는 토론회나 간담회에 워킹맘은 참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핑계라고 하지 않길 바란다. 아이가 아파서, 아이가 방학이라서, 아이가 학예제를 해서 신청하는 연차만 써도 워킹맘은 모자란다) 


‘라떼파파(Latte-pappor)’. 한 손에 커피를 들고 한 손으로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아빠를 일컫는 스웨덴어다. 스웨덴은 아빠가 육아휴직을 내고 아이와 함께하는 일이 이미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복지가 잘 갖춰진 스웨덴이니까 가능한 일로 치부하지 않았으면 한다. 


스웨덴 역시도 남자 육아휴직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정부가 아빠 유급 육아휴직 기간을 대폭 늘리고 아빠가 사용하지 않으면 자동 소멸시켰다. 또 아빠 육아휴직이 가정 경제에 부담되지 않도록 추가 세금감면 혜택도 제공했다. 그래서 바뀐 것이다. 사용하지 않으면 손해 보기 때문에 한 사람 두 사람 시작한 것이 문화가 된 것이다. 정책이 먼저다. 손해 보기 싫어하는 요즘 사람들은 분명 못 이긴 척 따라갈 것이라 확신한다. 


엄마 혼자 육아하라면서 ‘일ㆍ가정 양립’ 외치는 건 어불성설이다. 아빠 육아휴직을 권장하는 정책을 만들자. 어쩔 수없이 친정엄마에게 의존하는 육아에 지원 좀 해주자. 아파트와 마을 곳곳에 공동육아터를 만들자. 그러면 내 친구 능력도 사회에 환원될 것이다. 꽤 스마트한 여성이다. 정말 아까운 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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