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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사기장은 “학술적인 것은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며, 조사와 발굴 역시 전문가들이 할 일이지만 그 일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 우리도 알아야 한다”며 “법기리 도요지는 법기리 산82에 있는 면적 1천749㎡ 규모인 16∼17세기 조선백자 가마터로 창기마을 이름을 붙인 ‘창기사발’을 만들던 곳으로, 한국과 일본 도자기 교류역사를 연구하는 매우 귀중한 장소”라고 말문을 열었다.
법기리 요지는 지난 1963년 사적 100호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이 요지는 조선중기 임진왜란 이후인 1607년 동래부사가 일본과 무역을 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 약 50~60년간 운영되다 폐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 생산한 제품은 사발, 대접, 접시 등으로 전량 일본으로 보내졌다. 당시 일본에서는 ‘주문양산사발’, 기다리는 것이 오지 않아 안달이 난다라는 뜻의 ‘이라보(伊羅保)다완’ 등으로 불리며 일본국보 26호인 ‘이도다완(井戶茶碗)’과 버금갈 정도 대접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곳에서 생산한 다완 일부가 현재 노무라문화재단 전시장에 전시돼 있다.
신 사기장은 “이처럼 양산 법기리 가마터는 한ㆍ일 간 도자역사를 풀어주는 열쇠며, 땅 속에 묻힌 사금파리는 단지 깨어진 도자기 조각이 아니다”라며 “이 가마터를 발굴한다면 일본인들이 그토록 아끼고 보물이 돼 있는 조선사발 실체를 밝힐 수 있다. 그래서 역사를 보다 정확하게 알려 많은 사람들 관심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법기리 요지는 1963년 사적 100호로 지정됐지만 제대로 된 관리가 되지 않고 방치돼 있었으며, 2011년 7월 28일 문화재청 고시에 따라 ‘법기리 도요지’에서 ‘법기리 요지’로 명칭이 바뀌었다. 양산시는 2014년 종합정비계획 용역을 마치고 올해 4억3천만원 예산을 확보해 부지 매입을 진행하는 등 복원 사업 첫 단추를 꿰었다. 이에 발맞춰 창기마을 주민들로 지난 5월 법기도요지복원추진위원회를 발족해 민ㆍ관이 협력해 법기리 요지 복원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