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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빛과 소금] 무상급식
오피니언

[빛과 소금] 무상급식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7/09/05 09:11 수정 2017.09.05 09:11

우리나라에서 학교 무상급식이 이뤄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전에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싸줬고, 도시락을 먹을 형편이 되지 않는 아이들은 굶어야 했다. 그래서 옛 위인 이야기에 흔히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주린 배를 움켜잡고 수돗물로 허기를 채우며 공부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학교에서 도시락 문화가 바뀌게 된다. 1998년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서 급식을 시작했고, 2003년을 기점으로 초ㆍ중ㆍ고 학교까지 전면 실시했다. 그리고 저소득층급식지원도 점점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급식비를 지원하는 방식이 세련되지 못해 아이들 인권이 침해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잖아도 가난이 서러운 아이들이 밥 먹을 때마다 자신이 저소득층이라는 사실을 다른 아이들에게 노출해야 했고, 일부 몰지각한 교사와 학교 관계자들은 이 아이들을 폄하하거나 노골적인 차별을 자행해 사회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이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때 아이들이 감내하긴 너무 어려운 현실이었다. 


그래서 대안 성격으로 나온 것이 전면 무상급식 시행이었다. 가난한 집 부잣집 자식 가리지 말고 다 같은 밥 먹여 공부시키자는 것이다. 이러한 전면적 무상급식은 경남 거창군에서 자발적으로 시작해 경남지역 전반으로 확산했고, 마침내 전국적으로 시행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이를 반대하다 시장직에서 물러나게 됐고, 최근에는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제동을 걸었다가 오세훈 시장 전철을 밟을 뻔 했다. 그들은 왜 반대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보편적 복지에 대한 거부감과 교육에 대한 보편적 복지에 대한 무지가 그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공부해서 남 주나?’라는 말을 자주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공부해서 남 주나? 다 저 잘되라고 시키는 것이지’ 그렇다. 우린 이때까지 나 잘되자고 공부했지 남 주기 위해 공부하지 않았다. 없는 살림에 남에게 꾸어서라도 학교 보내 공부시키고, 주린 배 움켜쥐고 수돗물로 허기진 배 채워가며 공부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다 나 잘되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잘 돼서 우리 가족을 살리고, 우리 가문을 빛내는 것 이것이 바로 공부 목적이며, 악착같이 공부시키는 이유인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아주 개인적이고 지엽적인 것이다. 다 나 잘되자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 잘되자고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세금으로 밥까지 먹여야 하는가? 아주 가난한 이들은 국가가 나서 돕는 것이 마땅하지만, 충분히 자기 자식 밥 먹여 공부시킬 능력이 있는 사람들까지 왜 공짜 밥을 먹여가며 공부시켜야 하는가? 이건 낭비며 정책적으로 봤을 때 ‘포퓰리즘’이라는 것이 홍 전 도지사와 같이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이들 논리다.


일견 타당한 주장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이 생각지 못한 것이 있다. 우리는 지금 공교육 또는 의무교육을 시키고 있다. 국가가 왜 이렇게 고비용을 들여 교육을 시키는 것일까? 바로 국가 동량들을 키워내기 위해서인 것이다. 



나라를 위할 줄 아는 훌륭한 인재야 말로 그 국가가 가지는 최고 자산이고, 이런 인재들이 많을수록 그 나라는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는 아주 뛰어난 몇몇 소수 엘리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 보편적인 수준을 말하는 것이며, 이 수준이 높을수록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자국 인재를 키우기 위한 교육정책 개발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무상의무교육 폭을 넓히는 것은 기본이고, 아이들이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제공해준다. 심지어 대학교육도 무상으로 하며, 대학생들이 걱정 없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학비뿐 아니라 생활비도 지급해준다. 


왜 이런 투자를 아끼지 않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교육은 나 잘되자고 하는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국가 인재를 키우기 위해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교육에 대해 이런 의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한 고등학생이 이런 글을 적었다. 


“저는 예전에 공부를 자기 자신을 위해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말 같습니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지식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좀 더 많은 사람이 작지만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그것이 공부를 하는 값진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세상에 도움이 되기 위해, 그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혹 실패할지 모르겠지만 전 끊임없이 채찍질 할 것입니다”


공부해서 남 주냐고? 아니, 남 주는 공부야말로 진짜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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