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양산천을 끼고 ‘쾌적한 강변 주거단지’로서 각광받고 있는 물금읍이 인구 10만명을 돌파했다. 물금읍은 지난달 22일자로 주민등록상 인구가 3만7천318세대 10만25명이 됐다고 밝혔다. 물금읍사무소는 25일 10만번째 전입주민을 방문해 축하꽃다발을 전달했다.
9월 말 현재까지 집계된 인구는 10만405명으로 날마다 증가세가 계속되고 있다. 이는 양산시 전체인구 33만2천여명의 30%에 해당하는 것이다. 지역인구는 지난해 말 8만6천명을 넘긴 후 올해 3월 9만명을 달성했고, 지난달 22일 10만명을 넘어 불과 9개월 만에 1만4천여명(16%)이 증가한 것이다.
물금읍 인구는 전국 읍ㆍ면 가운데 수도권인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10만6천여명에 이어 전국 3천500여개 읍ㆍ면ㆍ동 가운데 두 번째로 큰 규모에 해당한다. 그러나 내년 11만명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돼 전국 최고 인구 규모를 가진 읍이 될 전망이다. 또한 내년이면 인근 밀양시 인구(10만8천여명)를 넘어서고 3년 내 사천시 인구(11만7천여명)도 앞지를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물금읍 인구는 2010년 4만4천명이었다가 2013년 5만명을 넘긴 후 2014년 6만3천여명, 2016년 8만6천여명으로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물금지역은 경부선 물금역에, 경부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를 연결하는 지선에 물금IC가 위치해 있으며, 남양산나들목(IC)도 인접한 교통요충지로 부산, 김해공항, 울산, 창원, 김해가 모두 1시간 이내 거리에 있다.
특히 양산신도시 개발구역 가운데 2단계 일부와 3단계 전체구간 700여만㎡ 면적 개발을 본격화하면서 물금신도시에는 아파트만 단지 37곳 2만9천295세대를 건립했다. 이 가운데 단지 34곳이 준공했고, 나머지 단지 3곳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이처럼 아파트숲이 장관을 이루고 증산 중심상업지역 상가건물과 곳곳에 근린생활시설이 들어서면서 신도시 주거지로서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또한 양산부산대병원, 어린이병원, 한방병원 등을 비롯해 의과대학, 한의학전문대학원이 함께 의료도시로서 명성을 높이면서 지역 이미지를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물금은 1세기에서 5세기 초까지 오봉산 일대에서 철을 생산하고 남해바다와 낙동강을 연결하는 뱃길이 번성해 가야와 신라 간 치열한 세력다툼이 이어진 유서 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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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금정산 정상에서 바라본 물금읍 전경. 과거 논이었던 지역에 신도시 부지 조성 작업이 한창 이뤄지고 있다. |
ⓒ 양산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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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금정산 정상에서 바라본 물금읍 전경. 신도시가 조성돼 빽빽한 아파트 숲이 과거 논이었던 지역을 대신하고 있다. |
ⓒ 양산시민신문 |
낙동강 물난리로 삶의 터전이 몽땅 유실되는 피해가 자주 발생했던 조선시대 1789년 당시 원동과 합친 인구가 474세대 2천512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일제가 1905년 경부선철도를 개통하면서 물금역이 들어서고 1926년 양산천변 저습지에 제방을 쌓아 현재 신도시가 조성된 980ha 규모 ‘메기들’ 논에서 곡식을 거둬들여 상대적으로 살기 좋은 고장이 됐다. 1936년에는 현재 강서동까지 합친 당시 물금면 인구가 1천495세대 7천241명으로 차츰 증가세를 보였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에는 인구가 1만명에서 1만2천명대 수준으로 오랫동안 정체상태였다가 범어리에 주공아파트 단지 3곳을 건설한 데 이어 양산시가 범어택지공영개발을 추진하면서 1990년부터 증가세를 걷기 시작하다 2010년부터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 것이다.
인구 증가에 따라 물금은 양산지역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변경민 물금읍 자치위원회 문화분과장은 “친수공간과 녹지가 많은 등 주거환경이 뛰어나기 때문에 주민 만족도는 높은 편”이라며 “외지인들의 급격한 증가로 지역사랑 일체감은 떨어지는 형편이어서 화합하는 시민운동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인구 10만명 돌파를 기념해 물금읍은 오는 22일 황산공원에서 읍민한마당축제ㆍ황산공원 알리기 걷기대회를 개최키로 했다.
박종태 물금읍장은 “아파트가 밀집한 반면 문화, 복지시설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어 앞으로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종국 선임기자 ysceo62@ysnews.co.kr
물금읍 약사(略史)
ㆍ조선초기부터 서면
ㆍ1807년 상서면으로 개칭
ㆍ1914년 하서면(원동)을 분리
ㆍ1936년 물금면으로 개칭
ㆍ1983년 교리,유산,어곡 양산읍에 편입
ㆍ1996년 물금읍 승격
ㆍ2017년 인구 10만명 돌파